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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월강문화상] 소설부문 대상_너와 나

2015월강문화상 소설부문 대상
유아교육과 김하늘

<심사평 : 사회복지과 임관수 교수>

올 월강문화상의 꽃은 소설이었다. 월강문화상 역사상 최상의 수준이었다.
문학을 하려면 인간에 대한 관심과 인간이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 그리고 언어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두 편 모두 이러한 점에 충실해 있었다. 문학을 아는 작가의 세련미가 돋보였다.
‘너와 나’에서 2인칭 주인공을 내세운 실험성은 전문 소설가 풍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아버지는 술만 마시고, 어머니는 도망간 가난한 집에서 동생을 보살피면서 성장한 "너”가 성인이 되어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고 살다 삼촌으로부터 아버지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빈소에 잠시 다녀온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이 “너”로 되어 있어서 독자들이 “나”보다 정을 주지 않기 때문에 주인공의 삶은 더욱 외로워 보인다. 이야기의 소재에 맞는 멋진 시점 선택이 돋보인다. 전지적 시점을 통한 심리묘사도 탁월하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제목 : 너와 나

토요일. 아침.

커튼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에 눈을 떴다. 새벽 3시까지 휴대폰을 만지고 잔 탓인가 몸이 무거웠다. 너는 습관적으로 잠을 깨기 위해 머리맡에 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부재중 전화 2, 메시지 1.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으나, 너는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낯 익은 뒷자리였다. 친가 쪽의 가족들이 동일하게 사용하는 번호였다. 너의 눈썹은 무의식적으로 꿈틀거렸다. 너는 메시지 버튼을 눌러 무슨 내용의 메시지가 왔는지 확인했다. 삼촌이었다.

‘아빠 돌아가셨어. 정말이야.’

놀랍지도 않은 내용이다.

너는 휴대폰의 전원을 누르고 액정이 바닥을 향하게 내려뒀다. 친가와 연락하지 않고 산 지도 벌써 6년이었다. 친가와 관련된 사람들이 문자로 연락을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낼 때에도 너는 무시했었다. 친가와 관련되는 것이 너무도 끔찍했고 회피하고 싶었다. ‘정말이야.’가 그것을 반증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무수한 연락에도 너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삼촌의 문자에도 너는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했다. 잊고 살던 아빠의 존재에 끔찍했던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 같아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더욱 생생하게 기억이 되살아났다.

-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을 말이었다. 너는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지만, 누구나 아침마다 할 보편적인 인사말을 작게 읊조리며 반지하방의 문을 열었다. 매캐한 곰팡이 냄새, 반지하의 꿉꿉한 냄새가 새벽공기를 만나 주변으로 흩어졌다. 한 평이 채 안되는 마당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깨진 유리로 너는 너를 응시했다. 열 한 살이지만, 너무나도 왜소하여 제 나이로 보이지 않는 어린 여아가 서있었다. 부모의 손길이 닿지 않은 모습이었다. 일주일 내내 감지 않은 머리, 벌써 사흘 내내 입는 티셔츠, 주중 내내 빨지 못한 바지가 보였다. 신발은 언제 물에 담궈졌는지도 모를 정도로 새까매 원래 무슨색이였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바지엔 전날 급식으로 먹었던 고추장찌개의 국물자국이 묻어있었다. 너는 엄지와 검지로 옷을 비벼 국물자국을 지우려고 애썼지만 헛수고였다. 너는 "내일은 주말이니까" 라고 작게 혼잣말 하며 저녁에 집에 오면 옷을 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는 녹이 슨 대문을 열고 평소처럼 집을 나섰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너는 친구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윤경의 책상 아래 사물함을 바라보았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너는 평소처럼 가방을 책상에 걸어놓고 짝궁과 숙제의 여부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후, 짜증이 섞인 아이의 목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에, 너는 그 쪽에 애써 시선을 두지 않으려고 했다.

"내 노트가 사라졌어!“

윤경의 주변에 아이들이 하나 둘 씩 모이기 시작했다. 무리 중 한 명의 아이가 물었다.

"네가 어제 샀다고 자랑하던 노트?"

요즘 유행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공책이었다. 윤경을 중심으로 어수선해진 교실에서 너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며 시간표를 보고 교과서를 꺼내며 수업을 준비했다.

"응. 내가 어제 책상 밑에 두고갔는데 지금 보니까 없어."

윤경의 주변 무리들은 윤경의 사물함, 책상 밑을 대신 살폈고 다른 무리들은 윤경의 짜증섞인 푸념을 듣고있었다. 너는 그 푸념들이 마치 너를 향하는 것 같음을 느꼈다. 윤경의 날카로운 시선이 너를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너는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어둠의 한 편에서 한껏 들 뜬 윤경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이거 봐라, 어제 저녁에 사온 노트야. 표지 다른 걸로 두 권이나 사왔어.”

“예쁘다. 얼마야?”

너는 평소에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노트였기에 부럽다는 듯 응시했다. 너의 표정을 본 윤경은 더욱 노트를 뽐내며 웃어보였다.

“한 권에 이천원이야. 이 노트로 열심히 필기해야지!”

너는 학교가 끝나고 아이들이 모두 빠져나간 교실에 몰래 들어갔다. 들어갈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문을 열고 윤경의 책상 앞에 섰다. 책상 밑으로 고개를 숙여 낮에 본 노트 두 권을 발견했다. 윤경의 의자에 앉아 노트 두 권을 말 없이 응시하던 너는 너의 가방 안에 넣고 교실을 몰래 빠져나와 도망치듯 학교를 벗어났다. 심장이 크게 고동쳤다.

 

“도대체 누구야! 혹시 우리반에 도둑이 있는거야?”

“윤경아, 선생님께 말씀드려.”

너는 고개를 들어 윤경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윤경과 시선이 마주친 너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시선을 책으로 돌리려고 하였다. 윤경은 너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누군지 잡히면 가만 안둘거야.”

앞문이 열리며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윤경의 주변에 서서 이를 지켜보던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너는 윤경의 시선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애써 책을 폈다. 곧이어 수업이 시작됐다. 죄책감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첫 번째 도둑질이었다.

-

종이 울리자 윤경은 너의 앞에 있는 자리의 의자를 빼며 앉았다. 그리고 울상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나 어제 사온 노트가 사라졌다? 책상 밑에 두고갔는데 아침에 보니까 없더라고.”

너는 죄책감에 윤경의 시선을 받아내지 못하였다. 너의 시선은 시계에서 칠판으로, 칠판에서 창문으로, 창문에서 대각선의 책상으로 옮겨졌다. 너는 죄책감에 아무렇게나 입을 열어버렸다.

“어제 나 학교에서 늦게 갔는데… 누가 우리 반에서 나가는거 봤어.”

윤경은 눈을 크게 뜨며 그게 누구냐고 물었다. 너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뒤…뒷 모습만 봐서 잘 모르겠어. 뛰어가서 너무 빨리 사라져서 잘 못봤거든.”

너가 입으로 옮기는 모든 말들은 너의 어제 모습일 것이였다. 윤경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너를 응시하며 말했다.

“근데 너 왜 어제 늦게 갔는데?”

“나… 숙제해야하는데 두고간거 있어가지고….”

“그래? 우리 오늘까지 내야할 숙제 없는데. ”

“…내…내일 숙제 미리 하려고 왔었어.”

“아, 그래? 뭐… 겨우 노트 사라진거니까 신경 안쓰려고. 거진가? 노트 살 돈도 없어서 훔쳐가냐.”

너는 윤경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책상으로 떨궈 책을 응시했다. 윤경은 알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윤경의 시선이 끝까지 너를 향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복도가 시끄러웠다. 너는 늘 같이 급식을 먹는 친구들과 함께 급식실로 향했다.

“오늘은 점심 뭐 나와?”

“돈가스랑 미역줄기무침 나온다. 맛없는거야.”

친구들은 또 맛없는 음식이 나온다며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다. 넌 아무 말 없이 식판을 들어 급식을 받아 친구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어휴, 이렇게 맛없는걸 왜 맨날 주는거야?”

친구들은 자리에 앉아서도 젓가락을 뒤적거리며 반찬 투정을 하고있었다. 너는 밥을 입에 넣으며 친구들의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집엔 이마저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너가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는 때는 학교에서의 급식 시간이었다. 너는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들은 많이 먹으려고 애썼다.

“집에 가면 엄마한테 치킨 시켜달라고 해야겠다. 정말 맛없어서 못먹겠어.”

친구들의 불평에 너는 물끄러미 반찬을 응시했다. 너에겐 없어서 못먹는 음식이었다. 너는 어제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하려고 했다. 하지만 기억하는 일이 힘들지 않았다. 늘 집에서 먹는 음식은 라면이나 인스턴트 레토르트 조리식품이었기 때문이다. 옆에 앉은 친구는 너를 툭툭 치며 물었다.

“넌 밥 잘먹네? 어제 저녁은 집에서 뭐 먹었어?”

“어제 저녁? 3분 미트볼이랑 밥 먹었어.”

“맛있는거 먹었네! 부럽다. 우리엄만 집에서 인스턴트 음식 못먹게하시는데..”

너는 친구의 부러움섞인 대답에 답할 수 없었다. 물론 어제 저녁이었던 미트볼은 분명 너에게 맛있는 음식이었다. 미트볼은 한 달에 한 두 번정도만 먹을 수 있는 특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는 3분 조리 인스턴트 레토르트 조리식품 미트볼이 아닌, 엄마의 정성이 담긴 요리를 먹고싶었다. 친구의 푸념이 자랑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

“다녀왔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퀘퀘한 곰팡이 냄새가 너를 감쌌다. 너의 목소리에 여동생 수정이는 배를 감싸쥐고 너에게 다가왔다.

“언니, 배고파. 기다렸어.”

너는 가방을 벗으며 수정에게 말했다.

“밥 차려서 먹고있지, 왜 아직까지 안먹었어.”

 너는 수정과 함께 밥을 먹기 위해 싱크대 찬장을 열었다. 어두운 찬장에 빛이 들자 안에 있던 바퀴벌레는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11살인 너에게 이런 것들은 일상이었다. 너는 익숙하게 라면을 하나 꺼내 포장을 뜯었다. 가스레인지에 올려져있는 냄비를 들어올려 제대로 씻지도 않은 채,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가스불을 켰다.

“언니랑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지. 혼자 먹기 싫어서…. 근데 언니, 오늘 저녁 또 라면이야?”

너는 수정의 볼멘소리에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어제 미트볼 먹었잖아. 그러니까 오늘은 라면을 먹어야 해.”

수정은 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밥상을 바닥에 펴고 방 안에 앉아 텔레비전을 응시했다.

“수정아, 숟가락이랑 젓가락 가져가야지. 물컵이랑 물도 가져가고.”

수정은 입을 비죽 내밀며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 앞에서 서있다 너를 보며 말했다.

“그치만 숟가락이랑 젓가락을 다 써서 없는걸.”

너는 한숨을 푹 쉬며 물을 틀어 싱크대에 있는 식기들을 대충 헹구고 수정이의 손에 쥐어줬다.

“컵도 가져가, 수정아.”

“알았어, 언니. 물 끓는다. 빨리 라면 끓여서 가져와. 배고파.”

너는 수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라면사리와 스프를 냄비 안에 넣었다. 너는 냄비 안의 물이 끓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늘도 집엔 아빠가 없다. 이 시간이 되도록 아빠가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니 또 술을 드시는 게 틀림이 없다, 라고 너는 생각했다. 너는 젓가락으로 냄비를 휘젓다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라면이 담긴 냄비를 들어 밥상 위에 올렸다.

“먹어, 수정아.”

수정이는 배가 고플텐데도 텔레비전에 시선을 응시했다. 텔레비전을 끄겠다는 너의 으름장에 수정은 라면을 자신의 그릇에 담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너는 라면을 입에 넣는 수정을 보고서야 라면을 너의 입에 넣었다. 수정은 입에 있는 라면을 삼키기도 전에 너에게 말했다.

“언니. 아빠는 오늘도 집에 안오셔?”

너는 아무 말 없이 수정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들어 시계를 응시했다. 6시.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아빠에게 전화 한 통 없는 것 보니, 오늘 아빠는 들어오지 않을 것이였다.

“엄마 보고싶다.”

수정의 말에서 엄마의 소리가 들리자 너는 얼굴을 구겼다.

“수정아, 엄마 얘기 하지 말라고 했잖아.”

“…미안해, 언니.”

“아빠 앞에선 절대로 엄마 얘기 하지 마, 수정아. 하면….”

너는 그 뒤의 말을 잇지 않았다. 하지만 수정이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곤 바로 대답을 했다. 10살의 어린 수정은, 아빠 앞에서 엄마 얘기를 하면 두들겨 맞는 다는 것을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알았어.”

“마저 먹어.”

“응.”

너는 그제서야 얼굴을 펴며 라면을 입에 마저 집어 넣었다. 수정은 망설이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언니, 나 내일 준비물 사가야하는데… 오백원 필요해.”

10살의 어린 수정은 돈 얘기에 걱정스러운 낯을 했다. 너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주머니 안의 돈을 모두 꺼내 손에 쥐었다. 500원 두 개, 100원 세 개. 두달 전 부산에 사시는 삼촌이 용돈으로 쓰라고 쥐어주신 만원은 동전 몇 개로 바뀌어 있었다. 너는 한숨을 쉬더니 500원을 수정의 손에 쥐어줬다. 어둡던 낯의 수정은 싱글벙글 웃으며 500원을 손에 꼭 쥐었다. 너는 너의 그릇에 있는 라면을 수정의 그릇에 옮겨주며 그릇을 들고 일어섰다.

“수정아, 다 먹으면 그릇 가져와. 씻어야하니까.”

물을 아주 약간 틀고 맨 손에 주방 세제를 묻힌 채, 너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물이 매우 차가워 너의 손은 빨갛게 물들어갔다. 그릇에 묻은 세제를 다 헹구니 수정은 그릇과 냄비를 가져와 씽크대 위에 올려놓았다. 너는 하기 싫은 내색도 보이지 않고 그릇과 냄비에 세제를 묻혀 설거지를 마저 했다.

“수정아, 숙제 있으면 빨리 해.”

“응.”

수정은 밥상에 앉아 책을 펴놓고 연필을 쥔 작은 손을 꼼지락댔다. 너는 설거지를 마치고 옷에 손을 닦으며 수정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꾀죄죄해보이는 수정이 보였다. 너는 큰 냄비에 물을 받아 끓이기 시작했다.

“수정아, 목욕하자. 숙제 끝나면 옷 입고 화장실로 와.”

너는 수정이 목욕 후 갈아입을 속옷과 옷을 챙긴 채, 집 밖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물을 틀어놓았다. 차가운 쇳물이 나왔다. 너는 물끄러미 변기에 앉아 쇳물을 응시한다. 정말 이런 물로 몸을 씻어야하는 걸까, 라는 생각에 미치자 너는 비참해졌다. 한숨을 두어번 내쉬던 너는 수정이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세숫대야에 쇳물을 받아놓고 부엌으로 발을 옮겼다. 끓고있는 물을 들어 밖으로 나가 화장실 세숫대야에 부었다. 차갑던 쇳물이 따뜻한 쇳물이 되었다. 그제서야 방안에서 옷을 벗은 채로 수정이가 화장실로 들어왔다.

“수정아, 언니가 옷 입고 화장실로 오라고 했잖아. 1층집에 할아버지 사시는데 할아버지께 알몸이라도 보이면 어떡할래?”

너의 한숨섞인 잔소리에 수정은 입을 꾹 다물고 너를 응시했다. 너는 수정을 잘 타이르며 말했다.

“수정아, 지금 11월이야. 우리 집 화장실은 밖에 있잖아. 밖이 너무 추운데 화장실 오다가 바람이 불어서 수정이가 감기라도 걸리면 언니가 많이 슬프잖아. 그러니까 다음부턴 옷 입고 화장실에 와. 그럼 언니가 수정이 옷 벗겨서 빨래도 해줄게. 알았지?”

너의 다정한 목소리에 그제서야 수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였다. 너는 세숫대야 옆에 주저앉으며 수정에게 말했다.

“수정아, 여기 들어와. 언니가 따뜻하게 해놨어. 목욕하고 자자.”

“응.”

수정은 쇳물이 담긴 세숫대야에 앉아 몸을 적셨다. 너는 물을 묻힌 비누로 수정의 머리카락을 감겨줬다. 수정은 말 없이 쇳물로 자신의 몸을 씻었다.

“따뜻해?”

“응.”

너는 수정의 머리카락의 비누거품을 물로 헹궈주며 수정을 향해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 너는 세숫대야 안에서 물을 첨벙거리며 놀던 수정을 일으켜 세워 수건으로 몸을 닦아줬다. 수건으로 수정의 몸을 감싼 후, 화장실 문을 연 후 재빠르게 반지하의 문을 열어 수정을 들여보냈다.

“수정아, 수건으로 몸 마저 닦고 추우면 이불 안에 들어가있어. 언니는 수정이 옷 빨고 들어갈게.”

“응.”

너는 화장실 문을 닫고 쇳물에 비누거품을 내어 수정의 옷을 빨기 시작했다. 그러다 퍼뜩 너도 목욕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미쳐 옷을 벗어 목욕을 했다. 수정이가 씻던 물에 네 몸을 씻었다. 11월의 차가운 공기가 너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자 서러움이 밀려왔다. 울음소리가 화장실 타일들 하나하나에 스쳐 울려 퍼지자 수정이가 들을까 두려워 넌 입을 막고 울기 시작했다. 너는 눈물의 원인을 찾으려고 애썼다. 아빠? 엄마? 아니면 또래와는 다른 상황? 모르겠다. 전부인 것만 같았다. 지금 이 시간까지 너와 수정이를 돌보지 않고 밖에서 술을 마셔대는 아빠도, 너와 수정이를 두고 떠나버린 엄마도, 엄마가 해주신 따뜻한 저녁을 먹고 쇳물이 나오지 않는 집 안의 화장실에서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는 또래들과 다른 너의 상황도 다 미웠다. 11살인 너가 견디기엔 버거운 무게였다.

화장실에 너무 오래있어 수정이의 곁을 오래 비운 것 같다라는 생각에 미치자 너는 급하게 차가운 쇳물을 틀어 몸을 헹군 후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화장실을 나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너는 몸의 물기를 다 닦기도 전에 수정을 찾았다. 수정은 이불도 제대로 덮지 않은 채 곤히 잠들어있었다. 너는 그제서야 안심하며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수정에게 이불을 덮어줬다. 그리고는 수정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수정의 얼굴을 매만졌다. 수정에겐 너밖에 없다는 것을 너도 알았다. 너가 지켜줘야 할 사람이 수정이라는 것도, 너에게도 수정이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너는 화장실에서 울던 너의 모습을 생각하며 후회했다. 약한 모습은 너에게도 수정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다음부턴 울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수정의 숨소리에 긴장이 풀리며 잠이 오기 시작한다. 너는 불을 끈 채 수정의 곁에 누워 잠을 청했다.

-

“욱- 욱- 흐으윽-”

고통스러워하는 신음소리에 너는 순간적으로 눈을 떠 상체를 일으켰다. 너는 어둠 속에서도 이불 위에 있는 것들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었다. 불을 켜자 놀란 표정의 수정과 이불 위의 토사물이 보였다.

“수정아, 수정아!”

너는 다급한 목소리로 어찌할 바를 모르며 수정의 이름만 불렀다. 수정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이불에다가 토하면 어떡해! 아프면 언니 깨웠어야지!”

너는 감정에 치우쳐 수정에게 소리를 질렀다. 수정은 금새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너를 응시하더니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엉엉 울어버다. 너는 이불을 걷어내어 집 밖의 세탁기 앞에 섰다. 이불의 토사물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몰라 토사물과 함께 그대로 세탁기에 넣었다. 토사물에 저녁에 먹은 라면으로 추정되는 것이 있어서 마음 한 구석이 아파왔다. 너는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가 수정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너는 물수건을 가져다 수정의 입 주위를 닦아줬다. 놀랐을 수정이에게 되려 소리를 지른 게 부끄러워 입 주위만 자꾸 닦았다.

“언니 미안해.”

너가 수정의 입 주변을 닦아주는 동안 너의 눈치를 보던 수정은 조그맣게 입을 열어 말했다. 너는 그 말에 너무 미안해져 눈시울이 붉어졌다.

“언니가 화내서 미안해. 괜찮아?”

너의 물음에 수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수정을 다시 눕히고 새 이불을 꺼내 덮어줬다. 수정을 다시 재우려고 불을 끄려고 수정의 뒤를 돌자 눈물이 떨어졌다. 불을 끄고 이부자리로 돌아와 수정의 얼굴을 쓰다듬다 눈을 감았다. 눈물이 자꾸 자꾸 자꾸 흘렀다. 얼른 누군가가 와서 너와 수정이를 구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너는 한숨을 쉬더니 결심한 듯 휴대폰을 들어 익숙한 번호를 찾아 전화버튼을 누른다. 신호음 한 번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린다.

“응.”

삼촌의 목소리. 정말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지만 이전과 같았다. 너는 담담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로 가면 돼요?”

“○○병원 장례식장.”

“네.”

너는 상대방이 말할 여지를 주지 않고 전화를 끊는다. 너는 바로 수정에게 전화한다.

“수정아.”

잠이 덜 깬 목소리의 수정에게 너는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돌아가셨어. 아빠.”

수화기 너머로 수정이의 작은 숨소리가 들린다.

“○○병원 장례식장이래. 강요는 안해. 네가 하고싶은 대로 해. 다녀오려면 다녀와.”

수정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끊을게.”

너는 전화를 끊고 이불 속에서 나와 옷장에서 검정색 정장을 꺼낸다. 9시가 넘은 것을 확인하자 너는 빨리 준비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화장실에 들어간다.

-

택시에서 내려 익숙지 않은 건물을 바라본다. 건물 현관에 낯익은 얼굴들이 서있다. 장례식장. 살면서 올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죽지 않고 평생 너를 따라다니며 괴롭힐 것만 같던 아빠가 죽어서 이 곳에 있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친가와의 인연은 정말로 여기까지라는 생각으로 온 너는 감정이 실리지 않은 표정으로 익숙한 얼굴들에게 고개만 약간 숙여 인사한다. 너는 그들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고 그들도 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너는 그들을 지나쳐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엘리베이터 옆에 붙여 종이에는 아빠의 이름 석자가 써져있고 너의 이름과 수정이의 이름이 보인다. 누가 이름을 올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너와 수정이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3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눈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의 수의 근조화환들이 눈에 보인다. 초라한 빈소에 들어서자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큰삼촌이었다. 너는 큰삼촌의 시선을 무시하고 고개를 돌려 사진 속의 얼굴을 응시한다. 아빠를 보지 않고 산 지도 6년이 지났는데, 사진 속 아빠의 얼굴은 6년보다 더한 세월이 지나간 것 같았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스치자 너는 영정사진 아래에 꽃을 두고 절을 한다. 너의 시선이 영정사진을 향했다가, 바닥을 향했다가, 손을 향했다가, 다시 영정사진을 향한다. 이상하게도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들만 떠올라 너는 입을 꾹 다문 채 절을 마치고 일어나 바로 신발을 신고 나온다. 너를 부르는 큰삼촌의 말에 대꾸도 않고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잠깐만, 잠깐만 얘기 좀 하자.”

넌 아무말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의 숫자만 응시한다. 1에서 움직이지 않는 숫자가 야속하기만 하다.

“갑자기 돌아가셨어. 아프다고 하길래 병원에 데려갔는데… 폐가 문제였고, 한 달동안 입원해 있다가 새벽에 갑자기 돌아가셨어.”

 

2

“너하고 수정이한테 많이 미안하다고 하셨어. 그러니까 아빠 미워하지 말고….”

 

3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너는 안으로 들어가 닫힘 버튼을 누른다. 고개 들어 삼촌을 보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안좋은 기억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너는 애써 끔찍한 기억들을 떠올리려고 하며 건물 밖을 뛰쳐나온다. 뒤에서 고모가 너의 이름을 부르지만 너는 애써 무시한 채 택시를 탄다. 이제 정말 아빠와 연결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안도한다.

-

평일의 한적한 카페. 너는 바깥의 사람들에 시선을 빼앗겨 멍하니 앉아있다.

“잘 지냈어?”

너는 익숙한 목소리 쪽으로 고개를 들어 웃음을 짓는다.

“응, 당연하지.”

친구 혜원이다. 너와 수정이의 사정을 전부 다 알고 있는 유일한 친구다. 혜원은 가방을 옆 의자에 놓으며 의자에 앉는다.

“아버님 장례식장은 잘 다녀왔어?”

“그렇지, 뭐. 혜원아, 커피 마실래? 사올게.”

“아냐. 됐어. 네 얘기나 듣자.”

너는 네 앞에 있는 머그잔과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다 입을 연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다녀왔는데, 마음 가벼워지려고 다녀 온건데, 마음이 더 무겁네.”

너는 쓴 웃음을 지으며 혜원의 얼굴을 응시한다.

“어떻게 하고 왔어?”

“그냥 꽃 놓고 절 하고 바로 왔어.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고싶지 않았고, 친가 쪽 얼굴들도 오래 보고싶지 않았고.”

혜원은 아무 말도 없이 너의 얼굴을 응시한다. 걱정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는 눈빛이다.

“근데 이상하게도 안좋았던 기억들이 떠오르지 않더라고.”

“….”

“맨날 수정이랑 나를 때리고, 욕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기억나지 않아. 좋았던 기억만 나더라. 그 사람이 내 기억에서 나쁜 기억들을 다 가져갔나봐.”

“마음은… 편해?”

“아니. 전혀. 성인이 되고 난 이후부터 연락을 끊은지 6년이 지났는데, 어째 마지막으로 봤던 스무살보다 훨씬 더 늙으셨더라. 6년보다 더 한 세월이 지난 것만 같은 얼굴이었어.”

“그랬구나….”

“빈소도 어찌나 초라하던지…그냥 불쌍하더라.”

혜원은 말 없이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너에게 건내준다. 너는 그제서야 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너는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닦는다.

“나한테 화나네. 그 사람한테 아무런 감정이 안남아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말 하면 눈물도 안흘릴 줄 알았는데.”

“…울고 싶으면 울어.”

“아빠를 보지 않던 6년동안, 나는 절대로 아빠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영정사진 속 아빠의 모습을 보며 좋았던 기억만 떠오르게 되더라. 처음으로 아빠를 보고싶었어. 사진으로 얼굴을 보고있는데… 보고있는데도 보고싶더라. 이상해, 사람 참.”

“….”

너는 혜원에게 아빠에 대한 감정을 털어놓으면 털어놓을수록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딱 맞는 말이야.”

늘, 혜원과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무거웠던 마음이 이상하게도 오늘은 가벼웠다. 훌훌 사라져버리는 것 같았다.

 

너가 혜원에게 아빠에 대한 감정을 모두 쏟아내고 나서 시계를 보니 2시간이 흘러있었다.

“오늘도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렸네. 맨날 이렇게 들어줘서 고마워. 혜원아.”

“아냐, 마음 편해졌어?”

“응. 고마워.”

너는 혜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 밖으로 나가니 해가 지고 있었다.

“고마워. 또 연락할게.”

“응. 잘 지내고, 또 보자.”

너는 고개를 끄덕이고 혜원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혜원원과 얘기 하기 전엔 무거웠던 마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너무도 가벼웠다. 오랫동안 가슴 안에 있던 응어리들이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계속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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