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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월강문화상] 수필 대상 '혀, 뇌, 귀'

수필은 형식이 없이 마음이 가는대로 쓰는 글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필에도 다른 모든 글처럼 지켜야 할 준거가 있다. 그것은 통일성이다. 한 편의 글은 하나의 주제를 담고 있어야 한다. 이재학의 “재입학”은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으로 원고지 100매 이상의 수필로는 대단한 장편이다. 인생을 보는 진정성도 있었으나 분량이 길다보니 통일성이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는 대부분의 작품이 지닌 단점이었다.

윤현규의 “혀, 뇌, 귀”를 대상으로 뽑았다. 귀로 들을 때 잘 듣고 머리 속에 받아들였다가 심사숙고해서 말을 해야 한다는 평범한 주제였으나, 동서양을 아우르는 고찰을 통해 생동감을 부여했다. 장원으로 뽑았다. 신은숙의 “밤하늘을 날아서”는 짧지만 고향을 생각하는 순수함이 잘 나타나 있었다. 차상이다. 그리고 오윤정의 “눈물”은 감정의 절제가 필요하지만 나름대로 남자친구의 단점에 대해 애정으로 감싸는 마음이 좋았다. 차하로 뽑았다.
[심사 : 사회복지과 교수 문학박사 임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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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대상 ; 생명화공과 윤현구
 

혀, 뇌, 귀

“생각 없이 말했는데 사람들이 상처받아요.”
“그럼 생각하고 말하세요.”

예전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짤막한 유머다. 그저 피식하고 지나갈 수 있는 유머로 느껴지겠지만 이 안에 담겨있는 의미는 가볍게 지나칠 만 한 건 아닌 것 같다. 특히나 말실수로 구설수에 오르는 공직자, 정치인, 사업가들이 많은 요즘엔 말이다.

의무교육은 물론이고 해외에 나가 유학까지 마치고 돌아온 엘리트들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말실수로 인한 스캔들, 정치적 파문 역시 넘쳐나고 있다. 가끔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조금의 생각도 없이, 뇌를 거치지 않고 뱉어내는 말이 많은 것 같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주변을 둘러보자. 사소한 말실수나 말다툼으로 인해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뇌를 거치지 않고 혀를 거쳐서 나온 말들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어쭙잖은 변명이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 등은 논리적이지 못하고 즉각적인 대답을 위해 툭툭 튀어나온다.

일례로, 중학교 시절 나는 청소 후 자습시간에 주먹밥을 먹고 있는 학생을 본 적이 있었다. 포장도 그렇고 생김새도 그렇고 학교 앞에서 파는 것과 똑같은 주먹밥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이 학생은 청소시간에 몰래 밖에 나가 주먹밥을 사와 먹고 있음이 당연한 상황이었다. 너무도 튀는 상황이라 선생님께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 학생은 조용히 먹고 있던 주먹밥을 내려놓았다. 이 때, 이 학생이 한 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너, 이거 어디서 났어?
“수돗가에 있던 거예요.”

수돗가에 있던 주먹밥을 주워왔다는 변명. 자신은 그저 떨어진 것을 주워 먹었을 뿐이라는 말이었다. 난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황당함과 당혹스러움, 어이없음을 적당한 비율로 버무리면 그런 표정이 나오지 않을까.

본인이 잘못해서 상급자에게 혼이 나는 상황이라면, 그 실수를 인정하고 다음부턴 그러지 않겠다는 모범답안을 뇌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혀라는 녀석은 워커홀릭인지라 시키지도 않은 말을 마구 뱉어내고 있다. 뇌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마무리 짓기 위해 모범답안을 찾아보지만, 혀는 뇌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반사적으로 내뱉는다.

말을 조심하라는 유명한 명언이나 어구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동양, 서양, 과거, 현재, 심지어는 미래에도 말을 조심하라는 당부는 넘쳐날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는 말이 있고, 10세기 초부터 중반까지의 5대10국 시대에서 11명의 황제 밑에서 재상을 지낸 풍도라는 인물은 입은 재앙을 여는 문이고(口是禍之門), 혀는 자신을 베는 칼이니(舌是斬身刀), 입을 닫고 혀를 깊숙이 간직한다면(閉口深藏舌), 어디서나 거뜬히 몸을 편히 하리라(安身處處宇)는 유명한 설시(舌詩)를 남겼다.

유대인들이 성경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탈무드에는 “인생을 진실로 참되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자기 혀를 조심해 쓰는 것이다”라는 말이 이야기에 녹아있고, 불경에서도 “혀의 허물은 무량무변(無量無邊)하다. 모든 악업의 시작은 혀에서 나온다.”는 구절이 있는 걸로 보아 각 종교, 혹은 고대의 인물들이 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잘 알게 해준다.

이렇듯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후손들은 말조심의 당부를 쉽게 잊는다. 현재 미국의 강력한 대선후보 중 하나인 도널드 존 트럼프 (Donald John Trump)는 각종 막말 파문으로 지지자들을 잃는 건 물론이고 ‘미국의 마지막 대통령’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로드리고 로디 로아 두테르테(Rodrigo Rody Roa Duterte) 현 필리핀 대통령 역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교황에게 욕설을 퍼부은 전적이 있어 세계의 우려를 받고 있는 중이다.

한 국가의 수장이, 혹은 수장이 되려는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 이러한 행보를 보여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이 할 말을 한 번쯤 생각해보고, 뇌를 거쳐서, 해도 될 말이지 안 될 말인지 걸러내는 것이 그렇게도 힘들단 말인가.

상급자와의 대화는 친구 사이와의 가벼운 대화와 같아선 안 된다. 성별이 다른 관계에선 조심해야할 말들이 있다. 상대를 자신보다 못하다고 못 박아놓고 대화를 시도하려면 틀어진다. 이 정도 상황파악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나이가 많은 어르신과의 대화에서 또래끼리 사용하는 은어와 비속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상대가 못 알아듣는다는 건 예외로 해도, 거리낌 없이 어른에게 은어와 비속어를 사용한다는 건 자신의 격을 낮추는 일이다.

어떤 상황을 마주했을 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상대가 어떻게 느끼겠다, 혹은 어떤 식으로 반응하겠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뇌 내에서 시뮬레이션 할 수 있고, 그런 능력이 있다. 스스로를 눈치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뇌를 일하게 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것을 알기 위해선 상황파악을 끝내고 자신이 지금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맞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한다.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되진 못해도 분위기를 보아 웃어야 할 때 웃고, 울어야 할 때 우는 사람은 최소한 중간은 간다. 만일 대화를 주도하고 싶다면 혀보다는 뇌를 믿어야 할 것이다.

말실수란 본인의 경력, 혹은 주위 동료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아주 어마어마한 실수이다. 본인을 얼마나 완벽한 사람으로 여기든 말실수는 일생에 몇 번씩 반드시 하게 되어있다. 그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과 따가운 눈초리, 죄책감은 감정이입 능력이 비정상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 느끼게 되어있고, 그 집단에 정기적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말실수에 대해 해명하든지 그 집단을 떠나든지, 혹은 뻔뻔함으로 밀고 나가는 방법뿐일 것이다.

허나, 말실수를 해명하기 위해 또 다른 말실수를 하는 식이라면 그 집단에서 완전히 매장당할 미래는 그리 머지않을 것이다. 말실수를 해서 집단을 떠나는 것만큼 디메리트도 없을 것이며, 뻔뻔함으로 밀고 나가는 것도 장기적으로 봐선 결코 좋을 리가 없는 일이다.

상대에게 말을 전할 때의 말실수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선 귀를 막는 거나 행동으로만 단어나 사자성어, 속담 등을 옆 사람으로, 옆 사람으로 전하는 게임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선 의미가 약간 바뀌더니 결국 정반대의 의미, 혹은 의미가 퇴색되어 전혀 맞지 않는 말들이 전해지기도 했다.

몇 달 전 친구 A에게서 친구 B의 장례식에 와줄 수 없느냐는 말을 들었다. 깜짝 놀란 필자는 이게 무슨 소린가 해서 다시 물어보았다. 알고 보니 친구 B가 아니라 B의 할머니 장례식이라는 말이었다. 그 때의 나는 무척이나 놀라 친구 B에게 직접 연락을 해보기도 했을 정도로 큰일이었다. 친구 사이의 작은 말실수였고, 지금은 웃어 넘길 수 있는 일이지만 만약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사소한 해프닝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언어적 소통은 우리 인간이 구석기나 신석기에서도 했던 오랜 역사가 있는 방식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각 시대의 학자라는 이들은 이 언어적 소통을 더욱 발전시키거나, 혹은 하지 말아야 할 목록들을 저마다 작성했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혀에 지배되는 사람들이 많아 자신의 의견을 최고로 내세우며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듣지 않으려하는 사람들을 미워한다. 그러나 본인이 아주 명석하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떠벌리는 사람은 아마 그의 혀가 착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명함의 기준은 얼마나 말을 많이, 빨리 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논리적이며, 어린 아이라도 이해할 정도로 쉬운 말을 하는 사람이 뇌가 현명한 사람이다. 뇌가 현명한 사람은 현명하다고 착각하는 혀를 가진 사람과 다르게 들을 줄을 안다.

언젠가 TV에서 하는 강의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강의를 하는 사람은 단순히 자신의 말을 떠드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 질문할 시간도 주고 틀린 의견이라도 자세히 들어주며 조곤조곤 설명해주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TV에 출연할 정도의 강사라면 당연히 저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할 말만 주구장창 떠드는 것은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강의가 아니라 약을 팔기위한 상술이나 다름없음이다.

뇌를 거쳐 혀로 내보내는 것만큼이나 귀를 거쳐 들어온 말을 뇌에서 재정립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물론 타인의 의견을 자기 마음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아무리 본인이 옳다고 여기는 일이라도 주위 사람들의 말을 한 번 쯤은 들어보는 것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자신의 의견이 아무리 타당하게 느껴져도 그에 대한 논리적인 반박이 있다면 한 번 쯤 들어봐야 한다.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밀고 나간 독재자 중 좋은 결말을 낸 이들은 역사적으로 없었다.

초한지의 항우(項羽)도 그러하였고,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Muammar al Qaddafi), 파라과이의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Alfredo Stroessner). 튀니지의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Zine El Abidine Ben Ali) 등 수십 년씩 본인의 의견만 밀고 나가다 쿠데타나 암살 등으로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은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극단적인 예시 말고도 일상생활에서 본인의 의견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을 고집 부리며 밀고 나가거나 융통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 아랫사람들을 자신의 입맛대로 부리는 순간, 국가라는 체제가 병들게 되는 것이다.

혀와 뇌와 귀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것을 얼마나 유익하고 올바르게 사용할 지는 그것을 쓰는 사람에게 달린 일이다. 만일 본인이 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면 저 세 요소를 최대한 잘 활용해야한다. 무턱대고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거나, 귀를 막고 듣지 않거나, 되는 대로 뱉어내는 것은 본인을 포함해 주변사람, 아랫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자. 그리고 들었다면 뇌에서 순수하게 받아들이자. 받아들였다면 최대한 혀를 부드럽게 굴리자. 그렇다면 어디서나 미움 받지 않고 둥글둥글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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