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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월강문화상] 소설 대상 '아지랑이'

금년도 월강문학상 소설 부문에서는 김다솜의 “아지랑이”와 구교웅의 “종이 속 세계”가 좋았다. “아지랑이”는 미혼모의 자매로 태어난 언니 희선과 동생 희연의 이야기이다. 병에 걸려 죽은 어머니와 같은 불치병으로 수술을 해도 생명연장밖에 안되는 동생을 위해 대학을 자퇴하고 알바로 동생의 수술비를 마련하면서 뒷바라지를 하지만 결국 숙명처럼 죽는 동생을 보는 언니의 사랑이 안쓰럽다. 가족파괴의 현실세계의 어두운 면을 잘 포착했다. 구교웅의 “종이 속 세계”는 탐미주의적 작품이다. 미술학도를 주인공으로 리얼리즘을 극복하고 인상주의와 표현주의라는 모더니즘적 특성에 도달하는 탐구의 과정을 그렸다. 그러나 그 과정의 참신성이 미흡하고 단락의 개념이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김다솜의 “아지랑이”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심사평 : 사회복지과 교수/문학박사 임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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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상 ; 경찰행정과 김다솜
 

아지랑이

여름이 길었다. 희선은 이미 지나간 여름에 동화되어 따라 떠나가기라도 하듯 흐르는 구름을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나 보던 하늘이었지만, 오늘따라 왠지 더 푸르게 보이는 탓에 정문 밖을 채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 주위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서 있는 것이었다. 그런 희선을 정문 밖으로 인도한 것은 자신의 전화벨 소리였다.

“작성 끝났어?”
“뭘?”
“자퇴하는 거, 자퇴서 오늘 작성한다며.”
“방금 상담실 갔었어. 처리 되면 연락 준대.”
“에휴, 자퇴한다고 할 때 다들 하는 농담일 줄 알았지. 이럴 줄 알았으면 뜯어 말리는건데.”
“미안해.”

희선은 연정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이 미안한지는 물론 희선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도, 휴학이라도 생각해보지. 네 상황이 어떤지도 잘 모르고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 너무 도망치듯이 관두는 거 아니야?”

그런 건 아니고. 희선은 짧은 대답을 끝으로 연정과의 통화를 마친 후 한 시간이 넘도록 하늘에 고정시켜두었던 시선을 거두어 정문 밖으로 향했다. 희선은 정문 밖을 빠져나오며 연정의 말마따나 이렇게 도망치듯 빠져나와야 했나, 생각했다. 연정의 물음엔 부정했었지만 사실, 도망치는 게 맞았다. 버스정류장에 걸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희선의 머릿속에는 “도망” 두 글자가 쉴 틈 없이 날아다녔다.
 

희선에게는 동생인 희연이 있었다. 그녀는 희선에게 있어 굳은살 배기지 않은 여린 살, 그리고 희선의 아픈 손가락이자 유일한 약점이었다. 감정이 무뎌질 대로 무뎌져 녹이 슬어버린 희선임에도 그의 무뎌진 감정을 깨뜨리는 것은 늘 희연이었다.

그래서인지 희선은 학교에 다니는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 전공 공부가 맞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학점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동기들과의 사이가 먼 것도 아니었으므로, 방금처럼 자신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주는 연정 같은 동기도 몇 있었다. 그럼에도 희선은 자신에게서 ‘평범한’ 대학생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그리고 희연이 꿈 꿀 수 없는 대학생의 모습을 혼자서만 만끽하고 있다는 사실이 손끝에 닿을 때마다 끝없는 죄책감에 잠식되어야만 했다.

월, 화, 수, 목, 그리고 금요일. 낮동안 평범한 대학생의 모습을 흉내 내고 해가 진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매 걸음마다 희연의 모습이 눈앞에서 그려졌고, 그것은 희선의 일상적인 고통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집에 들어서서 거실 불을 켜는 순간까지도 희연의 생각이 떠나지 않는 날이면 희선은 몸을 돌려 곧장 희연에게로 가곤 했다. 그리고, 오늘은 거실 불을 켜고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는 날이었다. 때문에 희선은, 언제나처럼, 오늘 또한 몸을 돌려 희연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희연은 병원에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예전부터, 희연은 몸이 좋지 않았던 엄마를 따라 아프기 시작했다. 엄마는 미혼모였고, 아팠다. 따라서 병에 걸려 제 몸 하나 가눌 힘도 없는 엄마가 혼자 어린 딸 둘을 감당하기란 여간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희선이 고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무렵, 엄마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남긴 사진 하나 없이 떠나버린 엄마의 목소리가 희선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지워져갈 때쯤, 희선은 희연을 보며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배웠던 가속도의 법칙이 희연의 병세와 맞물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죽고 난 뒤에 엄마의 병마만이 떠돌다 희연에게 달라붙은 것처럼, 무거워진 희연의 병은 가속이 붙어 그의 호흡을 점점 막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희연은, 아직도 여전히 그렇게 아팠다.
 

“자고 있었어?”
“아니, 아직.”

희연은 몸을 뒤척이며 일어났다. 누가 들어도 방금 잠에서 깬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희선은 그저 잠시 속아주는 것이었다.

“왜, 아직까지 안 자고?”
“오늘은 왠지 언니가 올 것 같은 날이라서…. 그래서 기다렸어.”
“그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빨리 올 걸 그랬나 보네. 전화라도 하지 그랬어.”
“전화 안 해도 왔을 거면서.”
“하여튼.”

서로를 바라보던 자매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희연의 병실은 병원에서 가장 높은 층에 있었고, 그의 침대는 창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매는 병원 안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밤 하늘과 가까웠다.

“오늘은 왠지 별이 많이 떴다.”
“그러게, 날도 추워지고.”
“여름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 같아. 여기 이제 밤이면 난방도 틀어준다?”
“응, 밤공기 많이 차더라.”
“맞다 언니, 저것 봐.”

저것 좀 봐, 저 별, 보여? 희연이 손끝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는데, 희선은 별이 많이 뜬 하늘에서 희선이 어떤 별을 가리키는지 알지 못했다. 대신 “응, 보여.”하고 맞장구를 쳐줄 뿐이었다.

“저 빨간 별, 전갈 심장이래. 저거 전갈자리거든.”
“전갈자리? 난 내 별자리 여태껏 눈으로 본 적 없었는데, 이런 건 또 어디서 배웠어?”
“그냥 어쩌다 알았어. 언니 전갈자리니까 별 잘 보이는 날에 알려주려고 참고 있었는데.”
“또 다큐에서 배웠구나. 그럼 처녀자리는 어디있어?”
“처녀자리는 이제 안 보여, 봄에나 보인대.”

희선은 전갈자리, 그리고 희연은 처녀자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희연은 자신의 꽃다운 처녀시절을 채 꽃피우지 못했고 희선은 희연의 생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독을 품고 있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이 머물렀고, 둘은 그 잠간의 정적동안 억지로 입을 열지 않았다.

 

“내일은 쉬는 날이야?”

얼마나 지났을까, 전갈의 심장에 빨려들 듯 그것을 노려보기만 하던 자매의 틈에 머물렀던 정적을 깨뜨린 것은 희연의 물음이었다.

“응? 그건 왜?”
“아니, 평소 같으면 언니가 돌아갈 시간인데도 계속 앉아 있길래. 쉬는 날이야, 내일?”
“응. 내일 쉬는 날이야. 내일도 쉬고, 모레도….”

말이 끝맺음 지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희선은 말 끝을 흐리며 괜히 간이침대를 넣었다가, 뺐다가, 바퀴를 발로 툭툭 쳐보기도 하고, 이불 끝을 말았다가, 폈다가 했다. 그런 모습을 의아하게 여기는 것은 다름 아닌 희선 자신이었다. 앞으로 쭉 쉴 거야, 자퇴했어. 마음속으로는 몇 번이고 태연하게 뱉을 수 있는 말이었다. 사실 희연에게로 오는 택시 뒷좌석에서도 오늘 희연에게 할 말을 떠올리며 자퇴 사실을 꺼내려는 작은 계획도 세웠었지만, 그럼에도 입 밖으로 내지 않고 괜한 딴청을 피우는 것은 마지막 남은 희선의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이어서 들려오는 일상적인 희연의 물음에도 그저 응, 응, 그래, 하는 대답으로 넘기는 희선이었다. 희선은 간이침대에 누워 자신보다 높은 곳에 누워있는 희연을 바라보았다. 희연 또한 자신보다 낮은 곳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는 희선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희선보다 높은 곳에 있는 희연과 희연보다 낮은 곳에 있는 희선의 모습이 묘한 괴리감을 자아냈다.

“희연아.”
“응?”
“넌 내 아픔이 만들어 낸 허상 같아.”
“언니는 가끔 알 수 없는 말들을 하더라.”

희연의 말에 희선은 작은 실소를 터뜨리곤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냥, 대학에서 배운 게 이게 다라서.”
“말 어렵게 하기?”
“응, 이젠 척척 다 잘 알아듣네.”
“그래서, 무슨 뜻인데?”
“내 기억 속에 너는 분명 건강했었거든.”

사실 희연은, 아직도 희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평소에도 자신을 유난히 특별하게 여기고 있는 희선임을 희연 또한 알고 있기에, 가끔 희선이 자신을 향해 알 수 없는 말을 뱉을 때에도 그렇구나, 하고 넘겨왔을 뿐이었다. 하고 넘겨왔다. 희선이 말을 끝마치면 희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이 희선의 말에 희연이 표현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자매는 서로를 이해한다고 생각했으나, 서로의 말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언니 갈게.”
“응, 조심해서 가.”

희선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물론 희연을 돌보는 것 또한 일상의 한 부분이었지만, 병실 밖으로 빠져나올 때면 잠시나마 오로지 희선만 있는 공간으로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희선에게 있어 희연 없는 일상이란 불가함이 확실했지만, 그냥, 희선의 기분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오늘은 할 일이 많았다. 대학에서 나름대로 친분을 쌓아왔던 동기들이 학교에서 자신의 자퇴 소식을 듣는다면 분명 한꺼번에 연락이 들이닥칠 것이다. 첫 번째론, 그 연락들을 하나하나 받아야 했고, 두 번째로는 더 이상 학교를 나가지 않아 남는 시간에 돈을 벌어야 했다. 이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희선이었지만, 희연의 재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월급 70만 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엄마가 남기고 간 가족들에게 있어 희선과 희연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손녀, 그리고 조카일 뿐이었다. 그들이 자신의 엄마처럼 가난한 게 아니었고, 오히려 부유한 편에 속한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으나, 그들에게 자매의 존재는 불행임이 분명했다. 그런 그들에게서 희연을 이유로 더 이상 손을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끌벅적했다. 희선의 예상대로 동기들은 집요하게 연락을 보내왔다.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는 동안 쉴 새 없이 울려대는 벨 소리에 면접 도중 빠져나와 핸드폰을 잠시 꺼뒀을 정도로, 동기들의 연락은 회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임을 깨닫고 동기들 중 가장 가깝게 지내던 연정을 통해 자신의 안부를 전했던 희선이었다.

그럼에도, 희선은 이렇게 바깥에서 동기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 떠난 학교에 대한 미련이 아닐까 생각했다. 바깥에서 만난 동기들은 학교 수업을 듣고 온 듯, 전공 책 한 두 개쯤 들어갈만한 큰 가방들을 하나씩 메고 있었다. 희선은 작은 지갑만 손에 들고 털레털레 걸어온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부끄러운 지갑을 외투에 욱여넣었다. 그리곤 그렇게 자신의 괜한 열등감도 함께 욱여넣을 수 있다면, 생각했다.

“그래서 왜 자퇴한 건데?”
“그냥, 학교 안 맞는 것도 있었고.”
“휴학이라도 먼저 해보고 결정하지.”

연정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동기들에게 희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하하, 그러게, 실없는 웃음을 짓는 것밖엔 없었다.

“하긴, 우리 과가 취업이 되고 그런 과는 아니니까.. 우리 전공 따라서 가는 사람도 많이 없잖아. 난 그냥 희선이가 부럽다. 휴학생, 자퇴생들 보면 나도 따라서 학교 쉴까 싶다니까.”
“부러워 할만한 거 아니야, 그냥.. 아니다, 그래. 학교 쉬는 건 좋은 거지. 여유도 생기고.”

밥을 먹고, 카페를 가고, 불편할 자리일 줄 알았던 동기들과의 만남은 큰 감정의 동요 없이 원만히 끝이 났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즐거움을 느꼈으면 느꼈지, 희선의 평화로운 감정을 망치는 일은 전혀 없었다. 동기들과 헤어진 후 희선의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태양 대신 자리 잡고 있던 달빛이 그 증거였다.

 

희선은 문예 창작과를 다녔었다. 희연이 책 읽는 것을 좋아했었기 때문에 입시생 시절 자연스레 관련 학과를 찾아보게 되었고, 그 결과물은 바로 문예 창작과를 등록한 자신이었다.

희선은 희연을 위한 글을 쓰고 싶었다. 물론, 희연이 좋아하는 책들의 작가명에 적혀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기욤 뮈소, 히가시노 게이고같은, 희연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유명한 데 이유가 있는 작가"처럼 될 순 없겠지만, 희연을 위해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희선은 자신 또한 채워지리라 믿었었다. 믿었었다. 과거형이다. 사실 그것들은 입시생 시절, 어린 희선의 나이만큼 얕은 생각이었다. 지금 희연이 책보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고 해서 희선이 다큐 감독을 꿈 꿀 수 없고, 혹여나 희연이 나중에 게임을 좋아하게 된다고 해서 희선이 프로게이머가 될 수 없듯, 아무리 희연을 위한다고 해도 희선은 희연만을 위해 살 수 없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희연 앞에서 자퇴를 했다고 말을 할 수 없었던 것. 그리고 자퇴생이 부럽다던 동기의 말에 마냥 기분 좋게 웃을 수 없던 것은 무슨 이유였는지, 희선도 알지 못했다.

사실 언제나 그랬다. 엄마가 죽고 희연이 아프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니, 어쩌면 그전부터. 희선의 좁은 세상에는 희연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았고 뿌리내린 그것들은 쉽게 떠나지 않았다, 희연만을 위해 살 수 없다던 자신의 다짐이 무색하게 어느새 희연만을 위해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때면 희선은 몇 번이고 절벽 아래에서 떨어지는 상상 속을 헤맸다. 희연을 떼어내려 마음을 비워내도, 빈 마음에 다시 차오르는 것은 결국 희연이었다.

엄마와 희연, 그리고 자신마저 아팠다면 이러진 않았을까. 엄마가 아직까지 살아있었다면, 왜 나만 이렇게 건강한 거냐며, 원망이라도 할 수 있는 건데. 생각이 깊어질수록 그 생각은 희선을 갉아먹는 좀 같은 존재가 되어 더욱 답답하게 조여오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울컥, 어떠한 감정들이 뒤섞여 머릿속을 지나 바깥으로 흘러넘쳤다. 희선은 제멋대로 흘러넘치는 감정들 속에 따라 떠내려가는 희연의 생각을 하나 집어삼키곤 자신의 옆을 지나쳐 가려던 택시를 붙잡았다.

 

“희연아.”
“오늘도 왔네?”
“희연아….”
“응, 언니. 괜찮아.”

희연은 제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희연이 고통에 아파 울 때, 또는 수술을 앞두고 공포에 사로잡혀 울 때, 옆에서 자신을 조용히 달래주던 희선의 말을 흉내 내며 우는 희선을 바라볼 뿐이었다.

“왜 울어, 안 좋은 일 있었어?”
“그건 아닌데….”
“그럼 왜 울어? 오늘 기분이 영 아니야?”
“…희연아.”
“응.”
“네가 생각해도, 네 생각에도 내가 너한테…매달려서 사는 것처럼 보여? 네 생각에도, 그래?”

아니야, 말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희연도 알고 있었다. 언니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따라 읽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희연이 가고 싶었던 학교의 문예 창작과를 갔던 것도, 자신의 병원비는 오롯이 언니가 떠안고 있다는 것도, 희선의 마음에 자신이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다른 마음을 들이면 시들어버린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정의 의미가 섞인 한 단어를 내뱉기가 어려웠다.

“언니 있잖아.”
“…….”
“난, 언니가 언니를 위해 살았으면 좋겠어.”
“…….”
“그동안 하고 싶은 것도 다 제쳐두고 나 때문에, 응, 그랬던 거, 알고 있었어.”
“…….”
“나는 언니한테 짐이야?”
“…아니, 아니야.”
“그럼 나를 위한 인생 말고, 언니의 인생을 살아. 난 언니가 분명 좋거든? 좋은데… 좋으니까, 나보다 언니가 언니의 우선순위가 되었으면 좋겠어.”

뚝, 뚝, 흐느끼는 소리도 없이 희선의 양쪽 뺨에 눈물만이 흘러내렸다. 희선의 감정들은 그의 눈물에 둥둥 떠오르다 눈물과 함께 추락해 병원 바닥에 버려졌다.


사실, 희선은 오늘처럼 희연의 허락을 받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만을 위한 삶을 찾아 나서기엔 희연을 위해 너무 멀리 와있었고, 돌아가는 길은 까마득했다. 자신의 마음의 무게를 희연도 알아줬으면 했다. 사실, 전부 투정일 뿐이란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입이 마를 정도로 눈물과 감정들을 버려내고 나니 희선은 그제서야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어쩌면 낮에 동기들을 만나며 지갑을 숨길 때보다 더, 부끄러웠는지도 모르겠다. 희연을 향해 뱉지 못할 사과만이 희선의 손 끝, 발 끝에 맺혀 있었다.
 

턱 끝까지 왔던 희선의 머리카락이 어느새 가슴에 닿을 듯 길었다. 날씨는 더 추워지다가, 조금씩 따뜻해졌다가, 쌀쌀해졌다가, 다시 가을이 올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언니 왔어, 희연아.”

그리고 시간은 희선에게만 흘러갔던 것이 아니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가고, 그것은 희연도 예외가 아니었다. 희연은, 제 엄마의 마지막 세 달 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희선이 와도 눈동자만 굴려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는, 그런 모습. 희선의 재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그 성공은 희선의 병이 깔끔하게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 아니었다. 간신히 호흡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렇게 그저 살아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의미였다.

“희연아 오늘은…”

희선은 희연의 바람대로 자신의 삶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었다. 회사에 취직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얼마 전에는 하고 싶던 공부도 욕심을 내어 알아보던 차였다. 대학 때까지 물고 늘어졌던 글은 이제, 희선의 취미로 남았다.

희선은 종종 희연에 대한 글을 썼다. 더 이상 희선의 글을 보고 반응해줄 수 없는 희연이었지만, 그래도, 희선은 꿋꿋이 희연이 주인공인 글을 그의 옆에 앉아 읽어내려갔다.

“또 글 쓰면, 읽어주러 올게.”
“…….”
“언니 다음주에 면접이다? 전에 가고 싶다고 했던 그 회사 있잖아. 운이 좋은 건지, 뭔지, 서류도 합격했고, 어떻게 하다 보니까 내일은 면접이야. 신기하지?”

여전히 답이 없는 희연이었지만 희선은 뭐가 즐거운지 웃었다가, 혼자 얘기하다가 인상을 찡그리기도 하곤 했다.

“또 올게. 벌써 갈 시간 벌써 다 됐다.”
“…….”
“잘 있어, 희연아.”

병실 밖을 나서는 희선의 발걸음은 작년 이맘때보다 더 가벼워진 듯 보였다. 작년의 희선이었다면, 쇳소리같은 숨소리를 뱉으며 눈만 굴리고 누워있는 희연의 모습을 볼 때마다 펑펑 눈물을 쏟아내는 탓에 주위 시선을 모조리 끌어 모으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렇지 않았다. 평생 붙들고 떼지 못했던 희연에 대한 미련이 가을 나무처럼 한 잎 한 잎 떨어져나가고 있었다.
 

그날따라, 희선의 전화 벨소리가 요란스러웠다. 오랜만에 희선이 쉬는 날이었던 그 날에 울리는 전화 벨은, 깊게 자고 있던 희선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희선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씻지도 않고 집 밖을 빠져나와 희연이 있을 병원으로, 향할 뿐이었다.
 

희연이 죽었다. 예상대로였다. 평소와 같은 벨 소리가 요란스러웠을 때부터, 직감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희연의 장례는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치러졌다. 그날은 얼굴도 모르던 엄마의 가족들의 얼굴을, 처음으로 볼 수 있던 날이기도 했다.

엄마의 장례식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가족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희연의 장례식에 다 같이 모여, 희선에게 형식적인 위로의 말 몇 마디와 함께 희선에게 거액이라면 거액이라 할 수 있는 돈을 손에 쥐여주고는 빠져나갔다. 그 형식적인 말 속에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 덧붙여주는 이는 없었다.

발인이 끝날 때까지. 희선은 멍한 상태 그대로 서 있었다. 장례식장 한 켠을 차지하던 희연의 웃는 얼굴이 치워지고 그 옆을 장식하듯 붙어있던 국화꽃이 버려질 때까지도, 희선은 아무 감정 없는 밀랍인형처럼 그저 멍하니, 멍하니 그렇게 있었다.

희연의 죽음이 실감난 것은 희선이 상복을 갈아입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장례식장 문 앞에서 상복을 입은 타인들을 거쳐 지나갈 때, 희연은 감당할 수 없는 감정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버리곤, 펑펑 눈물을 쏟아내었다. 이렇게 울고 눈물을 쏟아내도, 희연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걸 알고 있던 희선이지만, 그래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그렇게 한참을 울어댔다.

하루빨리 희연의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것이 희연의 마지막 바람이었으니,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가 평소처럼 희선만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희선에게 있어 희연 없는 일상이란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았다. 어쩌면 희선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고 있는 것 또한 희연의 바람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평생을 희연을 보고 살았고, 평생을 희선을 위해 살아왔다. 적어도 희선은 그렇게 생가해왔다. 때문에 그런 희연은 채 일 년도 안 되는 시간만에 없었던 것처럼 정리할 수 있는, 그런 소모품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삶의 중심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래서, 희선은 한없이 휘청이고 넘어졌다. 앞으로, 당분간은 그럴 것이 분명했다.

어느새, 희연은 자신에게 막을 수 없는 구멍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구나. 희선은 생각했다. 낙엽이 하나둘 떨어질 때 희선의 마음도 하나둘 떨어져나갔다. 눈앞에 아지랑이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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