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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월강문화상 당선작_수필

수필
/ [심사평]    흔히 수필을 문학 장르 중 가장 쓰기 편한 글로 생각한다. 시처럼 함축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형식의 구애도 받지 않는다. 소설처럼 오랜 취재시간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누구나 수필을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좋은 수필을 쓰지는 못한다.
수필은 나를 포함한 우리에게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이다.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 표현력도 중요하지만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을 때 비로소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그렇기에 수필을 쓰는 데는 오랜 시간이 들지 않지만 오랜 생각이 필요하다.
4편의 작품이 접수됐다. 그 중 시선을 멈추게 한 작품은 '이력서 속 그 작은 한 칸'과 '세명의 소녀들' 두 작품이다. 대상은 '세명의 소녀들'이다. 글을 읽으며 작가 박지영은 어떤 사람일까 상상하게 만든 작품이다. 이야기는 사진 한 장 속에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자신이 담기는 소재로부터 시작한다. 누구나 소녀였으며, 누구나(?) 엄마가 되기에 각자의 시간을 같은 시절에 놓고 글을 써내려가는 구성도 좋았고,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는 작가의 깊은 터치가 콧잔등을 시큰케 했다. 여러모로 단연 돋보이는 수작이다.
가작은 '이력서 속 그 작은 한 칸'이다. '취미'라는 말을 여러 각도에서 정의하려는 작가의 고민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다만 글의 구성을 포함한 완성도가 조금 부족했다. /

 

대상]

 

세 명의 소녀들

<간호학과 박지영>

세 명의 소녀들은 서로 손을 잡고 침대에 누워 카메라를 응사하며 “웃어~ 브이”라고 외쳤다. 그리고는 한 장의 추억을 남겼다.

맨 왼쪽 소녀는 74세이다. 그 옆의 소녀는 40세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20세의 소녀가 있다. 세 명의 소녀는 서로 닮았다. 피를 나눠서 일까 함께 긴 여정을 살아와서일까? 알 수 없지만 세 소녀는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세 소녀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웃는 이유가 무엇일까 알 수는 없지만 세 소녀는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세 소녀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웃는 이유가 무엇일까? 74세의 소녀는 현대의 어떤 병에 걸려 자신의 실제 나이가 아닌 정말 웃음 많은 소녀였던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갔다. 그 소녀는 자녀들을 키우느라 손에 지문이 다 닳아 없어져 버렸다. 또한 그 손에 손톱이 다 빠져있다. 그 소녀는 손에 지문, 손톱, 그리고 그 아름다운 모습이 존재하던 때로, 마음이 아름다웠을 때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두 소녀는 차라리 그 소녀가 병에 걸린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앞서 말한 소녀는 웃음이 이전보다 많아졌다. 육회를 보고서는 웃고, 맛나게 먹으면서도 웃는다. 사실, 이 소녀에게는 사진을 찍을 때 웃으라며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왜 두 소녀는 이 소녀에게 웃으라고 하였을까. 그리고 사진을 찍을 때에 웃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을 찍을 때 서로 웃으라고 말하며, 행복해 보이길 원하며 웃음을 짓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러면 그 두 소녀에 대해 들어보자. 먼저 40세의 소녀는 74세의 소녀가 손톱이 다 빠지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다. 손톱과 함께 빠져나가는 기쁨과 희망을 잃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 소녀는 가끔씩 주인집에서 시켜먹는 짜장면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그 짜장면이 너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마 엄마에게 사달라고 조르지는 못하였다.

엄마는 어느 날부터인가 새벽부터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고약한 생선 비린내와 함께 방에 들어와서는 걸레와 각종 청소도구를 들고 소녀의 가족이 쓰는 방외에 모든 곳을 청소했다. 그리고는 방에 들어와 쥐 죽은 듯이 잠에 들었다. 하루하루가 지나고, 그 소녀가 조금 더 성숙해지고 있던 때에 엄마는 새벽부터 깨워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리고는 생선들이 마구 너부러져있는 곳에 내렸다. 매일 엄마에게서 나던 냄새가 났다. 그 곳에서 엄마의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이 일제히 서서 너부러져있는 생선의 대가리를 따고, 몸통을 자른 뒤꼬리를 잘라 흰 박스에 넣었다. 엄마도 그 작업을 하는 중에 소녀는 해가 뜨는 것을 구경했다. 그리고 해가 질 때 즈음 버스에 탔다. 그런데 사람들이 일제히 그 소녀와 엄마를 찡그린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았다. 그 때 사춘기 소녀는 수치심, 부끄러움 그리고 원망이라는 감정을 깨우쳤다. 그리고 그 소녀는 커서 엄마가 되고, 20대 소녀, 70대 소녀와 누워 카메라를 응시하고, “웃어~브이”라고 외쳤다.

20대의 소녀는 귀하디귀한 외동딸이다. 그 소녀는 많은 축복 속에서 태어났고, 항상 기쁨과 희망 속에서 살아갔다. 그런데 그 소녀가 일곱 살 즈음 엄마는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들쑥날쑥했고, 집에 오면 잠만 자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렇지만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차려놓고 가는 것은 항상 똑같았다. 생선 하나, 국 하나, 반찬 서너 가지였다. 그런데 어느 날은 여러 옷가지와 학용품들을 챙겨가지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삼촌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되었다.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유치원에 들어갔다. 삼촌은 그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유치원 원장님은 나에게 잘해주었고, 나를 반겨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하루는 내가 화장실을 들러 수업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떤 여자아이가 나를 보며 “예쁜 척 하는 것 좀 봐, 왜 빙글~ 돌면서 들어와?”라고 했다. 그 후 자유시간이 되었을 때 블록 놀이를 하러 블록이 있는 곳으로 갔다. 거기에 앉으려고 하는 데 어떤 아이가 와서 “너는 여기서 놀지마, 저리가”라고 하며 나를 쫓아냈다. 시무룩해진 나는 삼촌과 집에 갈 시간을 기다렸다. 계단에서 삼촌이 수업하고 있는 도장을 구경하는 중 선생님께 들켜 다시 수업하는 방으로 갔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며, 시간이 지났다. 몇 년 후 엄마와 함께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점점 커서, 엄마의 기쁨과 희망이 사라졌던 날들, 버스에서 처음 수치심을 겪었던 날들 그리고 나와 떨어져 살아야 했던 날들을 이해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소녀는 할머니, 엄마와 만났을 때, 침대에 누워 카메라를 응시하며 “웃어~브이”라고 외쳤다. 이 세 소녀들은 각자 마음속에 아픈 기억들이 있다. 마냥 기쁘게 살 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카메라를 보며 웃는다.

우린 가끔씩 사진첩을 열어볼 때가 있다. 그러면서 “이때 참 좋았었지..”하며 이야기한다. 왜 기억이 가물가물하거나 기억이 나지도 않는 사진을 보며 항상 좋은 추억이었다고 생각할까? 아마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이 항상 웃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진을 보며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한다. 그 기억이 사실이든지 아니든지 말이다. 그리고는 말한다. “참, 이때 좋았었지.” 이 말 속에는 자신의 마음에 이런 위로의 말이 담겨있다. “그래, 이때 참 행복했잖아, 그러니 지금은 조금 힘들어도 괜찮아.” 아마 세 소녀가, 그리고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웃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담겨있지 않을까? 행복했던 추억을 만들어 보며, 언젠가 그 사진을 보는 나의 어깨를 토닥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카메라를 보며 또 웃는다.

 

가작]

이력서 속 그 작은 한 칸

<간호학과 김희호>

누군가 나에게 취미를 하나 가지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생각해보니 길가나 아무나 붙잡고 “당신, 취미가 있나요?”라고 물어본다면 열에 아홉은 “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열의 아홉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살면서 취미라는 것에 크게 관심을 갖고 살지 않아서 그런가 입가에 굴려봐도 ‘취미’라는 단어는 내게 낯설기만 했다. 당황한 나에게 누군가는 다시 말했다. “이력서에 적으려면 취미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지. 너도 결국은 취직을 해야 하잖아?”

그 말을 들으니 괜스레 조급 해져서 취미를 알려준다는 앱 ‘솜씨당’이나 집 엘리베이터에서 지속적으로 광고해서 이미 내적 친분이 생겨버린 ‘클래스101’등의 앱들을 깔고 그 안을 들락날락 거리기를 며칠, 결국 나는 그 앱들을 전부 지워버렸다. 나에게 필요가 없어서라고 생각해서 지운 것은 아니다. 다만 첫번째 이유는 취미도 결국 돈 내고 배워야지만 세상 누군가가 취미에 대해 물어봐도 ‘전 이러이러한 취미가 있어요’라고 말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못내 씁쓸해서 였고 또 다른 이유는 부모님 도움 없이는 이 세상을 살아가지 못하는 미성년(未成年)의 성인으로서 그 분들이 주시는 돈으로 사치를 부리는 것 같다는 죄책감을 지울 수 없어서였다.

아직 내가 미취학 아동이었던 시절에는 나에게도 누군가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는 취미는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라면 분명 나의 취미를 ‘책 읽기’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 당시의 책읽기가 정말 나의 취미인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순 없지만 책읽기를 가장 좋아하던 행동인 것은 확실했다. 어쨌든 우리 부모님께서는 나와 언니가 어렸을 적부터 독서하는 습관을 기르게 하려고 거실의 한 쪽 벽 전체와 우리 자매들의 방 구석구석을 책장으로 만들기까지 하셨다. 태어날 때부터 함께하던 벽이라 나는 그것이 당연한줄로만 알았다. 다른 집도 우리 집처럼 책이 많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것이 아님을 초등학교 입학하고 며칠 뒤 처음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 깨달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책을 안 읽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오히려 더 읽었으면 읽었지.

내 책사랑은 꽤 유서가 깊었다. 오죽하면 중학교 때는 동창들이 누가 나에 대해서 질문하면 이름은 몰라도 ‘도서관의 걔’라고 알고 있을 정도였으니 좋은 의미로 던지 나쁜 의미로 던지 책과 가까웠던 것 만은 확실했다. 사실 중학교 시절의 책사랑에는 회피성 심리가 어느정도 잔잔하게 깔려 있었다. 중학생이라면 보통 사춘기의 정점을 찍는 시기이고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중이병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시기인데 나라고 그 바람이 없었을 리 없다. 다만 나는 좀 땅굴을 파는 쪽이었고 나에게는 나만의 굴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땅굴이 도서관이었을 뿐이다. 모두들 한 발자국 내딛게 되면 진공상태가 된 것 마냥 입을 다무는 그런, 공간.

아무튼 과거 나름 열과 성을 다해 책을 읽어왔던 내가 어느 순간 책과 멀어져서 ‘책읽기가 취니는 아니’라고 말하게 됨에는 1년의 재수 기간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1년의 재수 기간. 내가 아직 짧은 인생을 살아서 내가 겪은 격렬한 감정의 고통이 재수생활밖에 없었던 것 일수도 있지만 1년, 그 1년동안 내 마음은 건조해졌던 것 같다. 사람들은 그까짓 1년따위야 살다 보면 아무 일도 아니었노라 위로 아닌 위로의 소리를 하곤 했지만 이 지긋지긋 하기까지 한 나의 1년의 공백은 내가 회귀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나를 쫒아오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재수하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보고 또 공부하는 방법만큼은 확실히 알려줬기에 그 1년의 기간을 옥의 티라고 해야할지 병 주고 약 준다고 해야할지, 살짝 헷갈리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재수생활을 기점으로 나의 집착적이기까지 했던 책사랑이 한 풀 꺾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책이 싫어진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난 여전히 책이 좋고 책방이나 도서관만 가도 행복해지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나의 취미가 무엇이냐고 남이 물어보면 전과 같이 당당하게 “책읽기요!”라고 하기에는 양심이 심각하게 찔렸다. 더 이상 책을 읽는 다는 행위가 나에게 큰 행복과 즐거움을 주진 못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질문에 한참을 고민했었다. 가족들에게도 넌지시 물어보기도 했고 친구의 옆구리도 한 두 번 찔러보기도 했지만 그들의 반응은 대게 비슷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그리고 그런 건 니가 직접 찾아야지.” 정말이지, 초가을 바람처럼 냉정한 사람들이라니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어떤 교수님의 말이 툭, 정말 한 여름에 봉숭아꽃 터지듯 툭 하고 떠올랐다. 그분께서 말하길 “취미는 좋아하는 것을 말하고 특기는 잘하는 것을 말합니다.” 라고 했다. 좋아하는 것? 생각치 못한 단어였기에 결국 나는 인터넷 초록 창에 ‘취미’라고 쳐봤다.

사실 취미(趣味)의 사전적 의미는 세가지가 있었는데 첫번째는 마음에 끌려 일정한 방향으로 쏠리는 흥미, 두 번째는 아름다운이나 멋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능력, 세번째는 전문이나 본업은 아니나 재미로 좋아하는 일 또는 것이라고 한다. 이 길기도 긴 3개의 뜻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취미=내가 좋아하는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 간단하다 못해 직관적이기까지 한 단어의 뜻을 보고 나는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토록 고민하고 무게 잡던 ‘취미’는 이토록 간단한 것이었다. 나의 길고 긴 고민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다시 너의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여전히 쉽게 대답하지는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구경하기 위해 도서관이나 책방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문구점에 가서 기성품들이 일렬로 정리되어 있는걸 보는 것도 좋아한다. 뮤지컬과 연극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영화 포스터들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 낮에 고즈넉한 카페를 가서 음료와 케이크를 시켜놓고 상대방과 느긋하게 대화를 하는 것도 좋아하고 늦은 밤 혼자 몰래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도 좋아한다. 비록 이런 것들은 이력서에 적기에는 너무나 길고 또 사소하기 때문에 적을 순 없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이력서에 적히는 취미만이 나의 취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력서 속의 그 작은 한 칸은 나의 행복을 담기에는 너무 작았다. 물론 취직을 위하여, 이력서의 그 공간을 위하여 취미를 만드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좋은 생각 역시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취미의 본질은 결국 당사자가 좋아하는 것이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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