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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심사평 <문학박사 임관수 _사회복지과 교수>
올해 소설 응모작의 수준은 예년에 비해 높았다. 예년 수준 당선작 정도로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정인규의 “자각증세”, 이소정의 “당신은 오늘부터 30일 후 죽습니다”, 오동욱의 “꿈의 그림자”, 최해의 “깜순이”가 있었다.
이 중에 오동욱의 “꿈의 그림자”에서 주인공이 직장에서 쫒겨나는 것이 한 번의 지각과 성공에 대한 성급함으로 되어 있으나 이유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당신은 오늘부터 30일 후 죽습니다”는 환타지 소설적 요소가 많고, 지나치게 감성적이라는 단점이 있었다. 이 두 작품도 예년의 수준으로 보면 수상작이 될 수는 있었을 것이지만 상대적으로 좋은 작품들이 있어서 수상에서는 제외시켰다.
정인규의 “자각증세”와 최해의 “깜순이”는 모두 심리묘사가 탁월했다. 그리고 주제도 포스트 모던한 특성인 불합리성에 대한 인식으로 되어 있었다. “자각증세”는 문장이 탄탄하나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틀린 점들이 눈에 거슬렸다. “깜순이”는 반려동물에 대한 정감을 다룬 작품으로 문장도 긴장감이 있고, 인생의 한 단면이라는 단편소설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었다. 따라서 최우수상으로 뽑았다. 더욱 정진할 것을 기대해본다.

// 소설은 분량이 많은 관계로 대상 한 작품만 게재합니다. //
 

대상 : 깜순이
간호학과 최해

녀석을 처음 만난 건 몇 해 전 아침 햇볕이 좋은 날이었다. 이 빌라에 10년을 살면서 처음 보는 강아지였다. 까만 눈망울을 빛내며 녀석이 넉살좋게 알은체를 해왔다. 신나게 통성명을 하고 있는데 맞은편 빌라 입구에서 아저씨 한 분이 이쪽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남의 강아지를 허락도 없이 만진 것이 겸연쩍어서 흘끔 눈치를 보았다. 알록달록한 신발까지 챙겨 신은 강아지에 비해 아저씨의 행색은 참으로 초라해서 이 녀석의 주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강아지를 쓰다듬던 손을 거두고 은근슬쩍 빌라 마당을 빠져나왔다. 아쉬움도 잠시 녀석과의 만남은 금세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나중에 엄마에게 들은 바로는 그 스피츠를 닮은 잡종 강아지는 아저씨와 단 둘이 살고 있으며, 퍽 호강하고 지낸다고 했다.

“맞은 편 집 강아지 너도 봤니? 걔가 아침마다 가방을 매고, 네 발에 신발을 신고 산책을 나가는데 얼마나 웃긴지 모르겠다.”

애교 많은 성격 덕분인지 빌라 주민들에게는 이미 꽤나 유명 인사인 모양이었다. 이후로 동네에서 종종 마주칠 때면 색이 바란 아저씨의 점퍼가 민망할 정도로 언제나 녀석은 새하얀 털을 자랑하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어딘가 오묘한 조합이 꽤나 눈길을 끌만한 것인지 그 둘이 지나가는 곳이면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르곤 했다.

 

녀석을 여러 번 마주치는 동안 나는 장기 취준생으로 전락했다. 싱싱했던 자신감은 구직기간이 1년이 넘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동기들과 학사모를 쓰고 눈물을 찔끔거렸던 겨울이 금세 돌아왔다. 유독 바람이 매워서 더욱 길게 느껴지는 겨울이었다. 차라리 하루살이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나무가 되어도 좋겠다고 상상하다가도 태풍이라도 와서 뿌리 채 뽑혀나갈 것을 생각하면 그건 싫다는 생각을 반복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상상 속에서 조차 나는 겁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밤이면 마음이 터져나갈 듯이 묵직해져서 못자고, 낮에는 정신이 몽롱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란 톱니바퀴가 한 번도 사용되는 일 없이 닳아버린 기분이었다. 정말 내 일상은 낡아 빠진 톱니바퀴처럼 삐걱삐걱 같은 시간을 굴러가고 있었다.

비슷한 생활이 반복되던 어느 날 고래로 환생하기로 마음먹음과 동시에 하루에 한 번 동네 산책을 나가기 시작했다. 다시 돌이켜봐도 기똥찬 생각이었다. 고래라니. 드넓은 바다를 우아하게 헤엄치고, 덩치가 커서 천적도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우리 동네를 유랑하는 고래가 되어서 볼이 부르틀 때까지 밖을 쏘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새하얀 강아지를 다시 만났다. 웬일인지 녀석은 혼자였다. 처음에는 심심하던 참에 잘 됐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깨달았다. 강아지는 매번 혼자였고, 몇 시간이 지나도 찾으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연일 한파가 계속되고 있는 마당에 주인아저씨가 녀석을 이렇게 오랜 시간 혼자 둘 리가 만무했다.

“엄마, 건너 편 빌라 아저씨가 키우시는 하얀 강아지 말이야. 요새 혼자 나와 있는 거 같던데 혹시 알아?”

“그래, 걔 요새 밤에도 나와 있더라. 주인아저씨가 갑자기 쓰러지셨대. 아랫집 아저씨가 잠깐 맡았다는데 산책시키기 귀찮아서 내놓았나 보네.”

“어디가 아프신데? 가족이 없으신가, 왜 아랫집 아저씨가 맡았지?”

“개랑 둘만 살았어. 나도 얼핏 들은 거라 자세히는 몰라. 아랫집 아저씨도 자식 타지에 보내고 혼자 사니까 친해졌나보지.”

매여 있지도 않은데 신통하게 마당을 벗어나지 않고 얌전히 놀던 것이 주인아저씨를 기다렸나 싶어서 코끝이 찡해졌다.

 

다음 날부터 강아지와 노는 것이 일과에 추가되었다. 우리는 동지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녀석은 나보다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주인아저씨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나도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큰 의미에서 동지였다. 새로 생긴 친구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덜 추우라고 등허리를 쓸어주는 것 정도였다. 녀석이 빨리 빌라 마당을 떠나 주인아저씨 품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매일 밤 기도했지만 벌써 2주나 흐른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불쑥 녀석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그 강아지 이름이 깜순이야.”

“흰둥이가 아니고?”

“예전에 주인아저씨한테 물어봤었어. 털은 하얀데 이름이 깜순이라 웃겨서 안 잊어버리고 있었지. 걔 요새도 나와 있더라.”

깜순이라니. 안 어울리는 거 같으면서도 어딘가 녀석을 닮은 이름이었다. 새까만 눈망울을 가지고 있으니 깜순이란 이름이 영 틀리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다음 날에는 녀석의 이름을 부르면서 더 친한 척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았다. 깜순이는 대개 오후 3시쯤부터 밖에 나왔고,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때쯤 아랫집 아저씨가 데리러 나오셨지만 한 번에 순순히 잡혀주는 법이 없었다. 아저씨가 허탕을 치고 빈손으로 돌아가면 그대로 밤까지 마당을 배회하는 것이 예사였다.

빌라 주민 중에는 간식을 챙겨주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얼마 없는 용돈을 털어 매일 한 번씩 간식을 주고 있었는데, 핼쑥해서 걱정을 샀던 얼굴이 다시 보니 달덩이처럼 불어난 것도 같았다. 깜순이는 나와 놀다가도 자기를 알뜰살뜰 보살펴주었던 사람이 보이면 얼른 뛰어가 인사를 건넸다. 녀석의 인사를 받은 주민들은 다정한 말과 함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곧 내 쪽을 보며 ‘이 녀석. 나한테만 이러는 게 아니었군.’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이 귀엽고 친절한 강아지는 빌라 주민들을 모두 친구 후보자로 점찍어 둔 모양이었으나 녀석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쨌거나 이름을 부르는 건 빌라에서 나뿐이니 우리는 다른 사람들 보다 좀 더 애틋한 사이였다.

깜순이가 밤까지 밖에 나와 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내가 옥상에 바람을 쐬러간다는 핑계를 대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오는 날도 잦아졌다. 무엇보다 순한 녀석이 아랫집 아저씨에게만은 까탈을 부리는 게 걱정이라면 걱정이었다.

“너 너무 예쁨 받고 지냈다고 티내는 거 아니냐?”

이렇게 타박도 해 보았지만 설령 내 말을 이해했다고 해도 깜순이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깜순이는 매일 밖에 나가 주인을 기다리는 것을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타들어가는 속마음이야 들여다 볼 수 없으니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 깜순이는 제 고집대로 매일같이 빌라 마당을 서성이며 매서운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맞았다. 나는 외투로 중무장을 하고 그 옆을 지키다가 얼굴이 얼어붙어서 못 견딜 정도가 되면 일어났다.

 

어느 날 아랫집 아저씨와 우리 집 사이 계단에 깜순이 휴게실이 생겼다. 또박또박 ‘깜순이 휴게실’이라고 적힌 종이가 벽에 붙어있고, 그 아래에는 두툼한 담요가 깔려있었다. 어떤 고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이런 배려를 했을까. 가슴을 뭉클하게 한 주인공은 그 날 저녁에 밝혀졌는데, 다름 아닌 엄마였다. 나는 단 한 번도 엄마가 동물을 예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깜순이 휴게실 만든 거야? 엄마 강아지 싫어하잖아.”

“싫어하진 않아. 키우면 다 내 일이 될 게 뻔해서 그게 싫은 거지.”

맞는 말이었다. 내 아래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이 둘이나 있는데다 치매 걸린 시어머니까지, 엄마는 슈퍼우먼으로 살아야했다.

‘그리고 지금은 취직 못 하는 큰 딸까지.’

불현 듯 떠오른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엄마는 자기를 챙길 새도 없이 사는데 정작 나는 마음껏 방황하고 있었다. 용돈도 내 손으로 못 버는 주제에 그걸 털어서 강아지 간식을 사고 있다는 걸 엄마가 알면 실망하지 않을까. 잠이 오지 않았다. 그저 그런 대학에 들어가서 아등바등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지만 눈을 낮추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회사에 들어갈 실력은 못 되는 어중이떠중이. 외면했던 현실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불쾌한 감정이 몰려왔다. 오늘의 나는 여전히 발전이 없었고, 깜순이는 추운 거리에 있었다. 서서히 점처럼 작아지다가 내일이면 고통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머릿속을 채웠다.

 

어김없이 아침은 매일매일 찾아왔다. 점처럼 작아지기는커녕 내 몸뚱이는 조금도 줄지 않고 그대로였다. 깜순이와 보내는 시간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밤에는 자기 비하에 빠져서 몸부림쳤지만 오전에는 티끌만한 장점까지 끌어 모아서 자기소개서에 적은 다음 나를 원하지 않을 것 같은 회사에 보냈다. 종종 핸드폰 화면에 달린 작은 창으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훔쳐보기도 했다. 뉴스에서는 이번 주 금요일부터 최대한파가 불어 닥칠 거라고 연일 경고를 하는 중이었다.

 

깜순이는 빌라 구석에 마련 된 담요가 자기 자리라는 것을 단 번에 알아보고 이후로는 휴게실에 앉아서 나를 기다렸다. 나도 깔고 앉을 무릎 담요를 들고 나가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여느 때처럼 깜순이 옆에 앉아 등허리를 쓸어주고 있는 와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친구들의 안부 연락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대화를 끝낼 변명거리를 고민한 후 열어 본 문자는 ‘귀하의 서류 합격을 축하드립니다.’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을 쓰는 기분으로 써 내려갔던 서류가 합격이 되다니. 쓰다듬는 손길이 멈추자 노곤하게 누워있던 깜순이가 일어나 나를 쳐다보았다.

“네가 복덩이였구나, 깜순아. 잘 되면 내가 맛있는 간식 쏠게.”

깜순이는 나중에 얻어먹을 간식에는 관심 없으니 지금 더 쓰다듬어 달라는 듯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날 저녁, 최대한 담담한 말투로 가족들에게 서류 합격을 알렸다.

“그 회사는 어떤 회산데? 이번 주에 엄청 춥다는데 면접 날이 하필 겹치니. 지역이 서울이라고?”

“응, 서울이야. 너무 기대는 하지 마.”

“네 일인데 우리가 기대하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어. 너나 부담 갖지 말고 잘 해.”

사실 들뜬 건 부모님이 아니라 내 쪽이었다. 면접을 보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연락이 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 한 회사였다. 얼마나 바라던 회사였는지 미주알고주알 떠들 것만 같아서 방으로 돌아와 옷장에 박아두었던 정장을 꺼내고 있는데 슬쩍 엄마가 따라 들어왔다.

“깜순이 주인아저씨 뇌출혈이란다. 중환자실에 계시는데 의식이 통 안 돌아오시나 보더라.”

“중환자실? 그럼 되게 심각한 거 아니야?”

“그 연세에 오는 병들이 다 그래. 어쩌겠냐. 오래 써서 몸이 고장 나는 걸 막을 수도 없고.”

주인아저씨가 몇 주 째 감감무소식인 것이 걸리기는 했지만 중환자실이라니. 본 적은 없어도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는 알 것 같았다. 지금까지 못 깨어나신 거라면…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이거. 아빠가 너 주래. 자기가 직접 주면 되지, 꼭 날 시키더라. 저 나이 먹고도 쑥스러운 가봐. 얼른 씻고 쉬어라.”

엄마가 내 손에 오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쥐어주고 나갔다. 나쁜 상상도 잠시, 코끝이 찡해지면서 이번에는 꼭 붙고 말리라는 결연한 마음이 차올랐다. 침대에 누워서 합격하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헤아려 보았다.

‘첫 월급의 반은 뚝 떼서 부모님께 드리고, 동생들에게 겉옷 한 벌씩 사주고, 친구들에게도 연락해야지. 깜순이 목줄도 하나 사서 산책을 나가자.’

오래 전에 내 안에서 사라져버린 줄만 알았던 의지가 폭포수처럼 흘러나와 꿈틀거렸다. 염치없지만 이왕 하나 들어주신 거 남은 기도도 마저 들어달라고, 얼른 주인아저씨가 돌아오셔서 깜순이와 전처럼 지내게 해달라고 빌면서 잠에 들었다.

면접 준비를 한답시고 부산을 떨다보니 어느새 결전의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며칠 동안 깜순이와 놀아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내일이 면접인데 얼굴이라도 보고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더니 담요 위에 앉아 있던 깜순이가 기다렸다는 듯 눈을 반짝거렸다. 한 달음에 달려가 쪼그리고 앉자마자 냉기가 훅 끼쳐왔다. 휴게실이 없는 것 보다는 나았지만 처량 맞은 신세를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찬 기운이 두툼한 담요를 뚫고 녀석에게까지 뻗쳤는지 몸이 얼음장 같았다. 기다림은 이미 익숙해졌다는 듯 깜순이가 조용히 나에게 기대왔다. 등허리를 쓸어주다가 평소보다 일찍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데 깜순이가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이 꼭 ‘조금 더 있다가 가.’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일 또 만나자.”

애처로운 눈빛을 피하여 집으로 들어왔다. 현관문이 닫힐 때까지 깜순이는 흔들림 없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매일 자기를 두고 돌아서는 의리 없는 친구라고 생각하겠지.

‘면접만 끝나면 하루 종일 놀아줘야지.’

그 날은 그렇게 혼잣말을 되 뇌이면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쳤다. 좋은 예감을 느끼면서 오랜만에 꺼낸 구두를 신었다. 밖으로 나오니 어쩐 일인지 깜순이가 댓바람부터 빌라 마당을 서성이고 있었다. 깜순이는 신이나면 벌떡 일어나서 옷 여기저기에 발자국을 찍기 때문에 오늘만큼은 녀석의 인사치레를 정중히 사양하기로 했다.

“내일은 하루종일 놀자. 나 다녀올게.”

깜순이를 남겨두고 빌라 마당을 빠져나왔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흘렀다. 순서를 기다릴 땐 억겁의 시간을 헤매는 것 같더니 막상 면접이 끝나고 나서는 터미널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표를 끊고, 제일 먼저 보이는 빈 의자에 걸터앉았다. 아침 이후로 먹은 게 없는데도 속이 미식 거렸다. 터미널 여기저기에서 음식을 팔고 있었지만 도무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창 밖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 갈 곳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도 가고 싶은 곳이 있었지만 오늘부로 그 곳이 나에게 문을 열어주는 일은 없을 터였다.

“작년 2월에 졸업했네요.”

아주 가벼운 말투였다. 있는 사실을 얘기했을 뿐인데 왜 그 말이 나를 질책하는 것처럼 들렸는지 모를 일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당당하지 못 할 것은 없었다. 청년실업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 출산, 연애를 포기한 세대라는 기사가 하루에 하나씩은 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정말 노력했다. 아니, 내가 정말 노력했나? 서울 한 복판에 있는, 낯선 건물의 낯선 방에서 나는 깊은 사념에 사로잡혔다.

“졸업 후 본인에게 가치 있었던 경험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면접 내내 질문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면접관이 입을 뗐다. 지난 1년은 나에게 사람이 꼬이려면 엉킨 실 보다 더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시간들이었다. 흐려지긴 했어도 그 중에 가치 있게 느껴지는 구간은 없었다. 도서관과 학원을 오가며 자격증을 하나라도 더 취득하기 위해 매달렸던 날들이 지나고 보니 영혼을 한 뼘 더 성장하게 했다고 얘기해볼까. 내 눈이 사방으로 굴러다니는 걸 상대방도 느꼈는지 그게 마지막 질문이었다.

“음, 대답하기 곤란하면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넘어가도록 하죠.”

 

버스에서 내렸을 때에는 이미 사방이 깜깜해진 후였다. 깜순이가 놀아달라고 매달려도 오늘은 들어주기가 힘들 것 같아 걱정했는데 웬걸, 빌라 마당이 휑했다. 막상 보고 싶은 얼굴을 못 보게 돼서 서운하긴 했지만 견딜 수 없이 피로가 몰려와 이내 섭섭한 마음도 쏙 들어갔다. 계단을 한 칸씩 올라갈 때마다 침대에 몸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부터 부모님의 온 신경이 나를 향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한 채로 까무룩 잠들어버렸다.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 정오가 넘은 시간이었다. 밤새 푹 잤지만 오히려 머리가 멍한 느낌이었다. 새로운 시작일거라고 예상한 오늘이 결국 어제의 반복이라는 사실에 속이 쓰렸다. 가족들은 어제 내 반응을 보고 결과를 예상했는지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듯이 모두 외출 중이었다. 평소와 같이 끼니를 간단하게 챙겨먹고, 세수를 하고, 양치를 했다. 사흘 밤낮을 샌 사람처럼 다시 졸음이 몰려왔다. 다시 침대에 누울까 하다가 깜순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겨우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켰다. 아직 오후 3시가 되려면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혹시라도 마주치면 기대하는 마음을 실망시킬 순 없으니 간식도 챙겼다. 역시 너무 일찍 나온 것일까. 마당은 여전히 비어있었다. 괜히 빌라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체념하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윗집 사는 학생이지요?”

낯선 목소리에 돌아보니 202호 아저씨가 서 있었다. 깜순이와 놀아주다가 종종 마주친 적이 있긴 했지만 간단한 인사 외에 대화를 나눠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안녕하세요.”

“요새 여기 나와서 노는 하얀 개 알지요? 학생이 자주 놀아줬던 것 같은데.”

그 동안 아저씨와 마주치면서 깜순이 얘기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덜컥 걱정이 되었다. 강아지들 마다 못 먹는 음식이 있다던데 먹인 간식이 잘 못 된 건 아닐까. 하지만 아저씨가 꺼낸 말은 깜순이가 내가 준 간식 때문에 앓아누웠다는 것 보다 더욱 심각했다.

“하도 내보내 달라고 보채기에 어제 아침 일찍 풀어놨거든. 나중에 나와서 보니 안 보이더라고. 혹시 어제 우리 집 개 본 적 있어요?”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깜순이가 사라졌다니. 목줄도 없이 무방비로 밖에 나와 있는 게 마뜩찮긴 했다. 제 아무리 똑똑한 강아지라도 행동반경이 조금씩 넓어지다 보면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했었다. 나라도 목줄을 사서 묶어놓을까 했지만 내 개가 아니기에 함부로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이 상황을 막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쳐버린 순간들이 스쳐갔다. 적어도 어제 내가 집에 있었다면, 그래서 깜순이가 없어진 걸 조금이라도 빨리 눈치 챘다면. 결국 뒤늦은 후회였다.

“나와 보면 학생이랑 놀고 있을 때가 많아서 혹시 아는 게 있나 했지. 고마워요.”

아저씨는 이미 벌어진 일이니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투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네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추운 날씨 때문인지 거리는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이미 시간이 하루가 넘게 지나서 깜순이가 어디까지 갔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깜순이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자기를 돌봐주는 사람을 만나지 않았을까. 누가 아는 체만 해도 달려가서 친한 척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보호소에 맡겨주거나 집으로 데려가 재워 준 사람이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냥 귀엽게 여기고 지나쳐갔을 수도 있을 테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제일 가까운 유기견 보호소를 알아냈다. 마지막 공고 날짜가 어제였다. 올라온 사진 중에 하얀 털을 가진 강아지는 한 마리도 없었다. 주말이라 유기견 보호소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월요일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틀 동안 방에 틀어박혀서 공고들을 하나하나 읽었다. 깜순이가 사라진 건 어제 아침이니 그 전에 올라온 공고를 읽어봤자 내가 아는 얼굴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매일같이 새로운 녀석들이 주인을 잃은 채로 발견됨과 동시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안락사 당하기까지 주어지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눈을 감으면 여기저기를 헤매다 아무데나 웅크리고 누운 깜순이가 보였다. TV에서는 몇 년 만에 몰아친 한파의 위용을 연일 떠들고 있는데 깜순이는 괜찮을까. 천운으로 살아있다고 해도 이 추위에 밖에 있었다면 어디가 단단히 잘못돼도 됐을 것이다. 눈을 감았다 뜨면 내일이 와 있길 바라면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월요일 아침,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보호소가 여는 시간은 오전 9시. 가족들과 마주치면 초조한 마음이 들킬 것 같아 잠에서 깨지 않은 척 하기로 했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직원들이 출근했길 기도하면서 미리 저장해 둔 번호를 눌렀다. 전화기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주말 내내 수 없이 되뇌었던 말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안녕하세요. 저번 주 금요일 오전에 강아지를 잃어버렸는데요, 보호소에 있나 해서 전화 드렸어요. 하얀 색 강아지이고, 암컷이에요. 확인 가능할까요?”

“지금은 저희가 회의에 들어가야 해서요, 혹시 강아지 사진 갖고 계세요?”

“아니요, 사진은 없는데…”

“그럼 번호 알려 드릴 테니까 강아지 특징 적어서 그 쪽으로 보내주세요. 회의 끝나면 확인해보고 연락드릴게요.”

깜순이와 지낸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사진 한 장 남긴 적이 없다니. 나의 무심함에 목이 메었다. 직원에게 보내는 문자에 사진 대신 내가 보아 온 깜순이의 특징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다. 암컷, 품종은 믹스, 희고 풍성한 털, 살짝 까져서 분홍 살이 드러난 코까지. 문자를 발송하고 나서 다시 기다림이 시작됐다. 30분쯤 지났을까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 속에서 깜순이가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찾았다는 기쁨보다도 겁에 질린 모습이 너무 가여워서 눈물이 찔끔 났다.

‘여기가 어딘지 도통 모르겠어요. 이제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머루 같이 까만 눈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깜순이의 일상을 원래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누구보다 사랑 받으며 살았던 녀석인데, 빌라 마당에서 이제는 유기견 보호소라니. 깜순이의 운명은 들판에 자란 풀처럼 흔들리고, 또 흔들리다가 이제는 뿌리까지 내보이고 있었다.

직원은 보호소에 한 번 들어온 개들은 내장 칩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니 비용을 챙겨 와야 한다고 안내해주었다. 지금 데리러 가겠다고 답장을 남기고 나서 지갑을 확인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은 7만원, 내장 칩은 3만원, 보호소는 우리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으니 넉넉잡아 택시비가 4만원. 딱 맞아떨어졌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왔다. 택시를 잡아 탄 다음 기사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강아지를 태워주실 수 있다면 데리고 나올 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 부탁드릴 생각이었다. 급한 내 마음과는 다르게 도로는 한산했다. 깜순이를 데려오면 아랫집 아저씨가 다시 흔쾌히 맡아주실까. 며칠 전에 본 아저씨는 깜순이를 더 이상 찾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에 데려왔는데 다시 맡아줄 생각이 없다고 하시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 때 요란한 벨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엄마의 전화였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면접 날 이후부터 가족들이 내 기분을 살피고 있는 걸 알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응, 국 끓여놓고 왔는데 아침 먹었어? 지금 밖이니?”

대충 도서관에 가는 중이라고 둘려대려다가 문득 아무에게라도 이 상황을 털어놓고 싶어졌다.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건지, 감정에 취해 책임지지 못 할 행동을 하고 있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엄마, 나… 지금 깜순이 찾으러 가는 중이야.”

“깜순이? 깜순이 아저씨네 집에 있잖아.”

“아니야. 사실 깜순이가 저번 주 금요일에 없어졌는데, 혹시나 해서 아까 유기견 보호소에 연락을 해 봤거든. 근데 거기에 있대. 그래서 데리러 가고 있어.”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성급하게 말을 꺼낸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깜순이 데려오면 어쩔 생각인데?”

“202호 아저씨한테 잘 말씀드리면 다시 맡아주실 것 같아서…”

“202호 아저씨께 여쭤보고 하는 일이니? 너한테 말 했는지 모르겠는데 아저씨 강아지 털 알레르기 있대. 저번에 만났더니 엉겁결에 맡긴 했는데 너무 괴롭다고 하소연 하시더라. 깜순이 챙겨주고 싶어 하는 건 엄마도 이해하는데 불쌍하다고 다 책임질 순 없는 거야. 만에 하나 집에 데려올 생각이라면 나는 절대로 허락 못 한다.”

단호한 말투에 말문이 막혔다. 틀린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저 깜순이가 조금 덜 심심하도록 놀아주고, 간식이나 챙겨주는 게 내 역할의 전부라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만 했다. 대답이 없자 엄마는 내가 고집을 피운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엄마도 깜순이가 불쌍해. 하지만 그게 걔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안 돌아오지도 모르는 주인을 기다리면서 밖에 떠돌아다니는 것 보단 거기 있는 게 깜순이한테 나을지도 몰라.”

사형선고를 받은 개들이 떠올랐다. 강아지들의 죄명은 사랑으로 보살펴줄 주인이 없다는 것이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기약 없이 주인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다 그만두는 편이 낫겠다고, 깜순이도 그렇게 생각할까?

나야말로 이렇게 고장 난 채로 살 바에야 고통 없이 사라져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깜순이는 꿋꿋하게 살아남길 바랐다. 그건 깜순이의 사연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녀석이 아저씨가 돌아오실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 목숨이 붙어있는 한 당연한 일이라는 듯 깜순이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남은 날을 살다보면 그 중에 분명히 좋은 날도 있을 테지. 하지만 그것도 모두 살아있어야 가능 한 일들이었다.

“엄마, 보호소에서 데려오지 않으면 깜순이는 얼마 안 가서 안락사 당할지도 몰라. 엄마는 그것도 걔 운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바꿀 수만 있다면 내가 해주고 싶어. 죽어서 편해지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어떻게 해서든 살다보면 아저씨가 돌아오실 수도 있잖아. 나는 그렇게 믿어. 내 앞가림도 못 하는 주제에 속 썩여서 미안해.”

엄마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걸음을 돌려서 빌라로 향했다. 막상 202호 문 앞에 서니 자신이 없어졌다. 용기를 짜내서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오전 10시니 집에 아무도 없을 법 한 시간이었다.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찰나 벌컥 문이 열렸다.

“아… 안녕하세요. 윗집 사는 학생인데, 그 때 강아지 잃어버렸다고 하셨잖아요. 혹시나 해서 제가 오늘 유기견 보호소에 연락을 해 봤거든요. 지금 거기에서 데리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데려올 수는 있는데 그렇게 되면 다시 맡아주실 수 있을까요? 며칠 내에 안 데려가면 안락사를 한다고 해서요…”

말 꼬리가 힘없이 늘어졌다. 아저씨는 잠자코 내 말을 듣고만 있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깜순이 소식이 별로 달갑지 않으신 모양이었다. 곧 아저씨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 개가 내 개가 아니에요. 원래 주인이 사정이 있어서 내가 맡긴 했는데 나도 아주 고생이에요. 몸도 아픈데 개 뒤치다꺼리 하는 것도 고생스럽고…”

더 들을 것도 없이 완곡한 거절이었다. 깜순이는 이제 영영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한 달 만에 이 빌라에서 깜순이가 머물 곳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그러시면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부러 힘주어 말 했지만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날 깜순이를 잃어버리지만 않았어도 녀석은 여기에 있을 텐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꼬여버린 것일까.

“…안 데려오면 안락사를 시킨다고요?”

“네, 그렇게 알고 있어요.”

아저씨는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내쉬었다.

“죽게 놔둘 수는 없지. 학생이 여기로 데려다 줄 수 있어요?”

“네! 제가 데려다 드릴 수 있어요.”

“그러면 부탁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드디어 깜순이를 데리러 갈 수 있게 됐다. 인사를 하고, 단숨에 도로까지 뛰어나왔다. 깜순이가 결국은 살 운명이라는 걸 암시하듯이 빈 택시 한 대가 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택시 기사님을 설득해야 했다. 거절하시면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고 매달려 볼 작정이었다. 예상외로 나이가 지긋하신 기사님은 흔쾌히 강아지를 데리고 타도 좋다고 허락해주셨고, 데리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시겠다고 했다. 보호소까지 가는 길은 생각 보다 훨씬 멀고, 길도 험했다. 포장도 되지 않은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자 작은 입간판 하나가 서 있었다. 깜순이가 있는 곳이었다. 상상과 달리 보호소는 아주 조용하고 한적했다.

“아까 연락하셨던 분이죠? 서류 작성하고 계시면 강아지 데려올게요.”

서류에는 보호자의 인적사항을 적어야 했는데 내장 칩에 인식할 내용이라고 했다. 나는 깜순이 주인이 아니었다. 주인아저씨가 맞은 편 빌라에 산다는 것만 알았지 몇 층에 사시는지 조차 몰랐고, 혹시 알아서 쓴다 해도 돌아오시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었다. 그렇다고 아랫집 아저씨 주소를 적을 수도 없었다.

“저기, 강아지 주인이 제가 아니라 같은 빌라에 사시는 분인데 얼마 전에 쓰러지셨거든요. 그래서 다른 주민 분이 맡아주고 계시다가 잃어버린 걸 제가 대신 데리러 온 거라 진짜 주인 분 인적사항을 모르는데 어떡하죠?”

직원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 복잡한 사정을 한 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까 제가 진짜 주인이 아니고, 주인 분 주소는 몰라요. 그래서 인적사항을 적을 수가 없어요.”

“그래도 서류는 작성하셔야 돼요. 보호소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나가시려면 꼭 거쳐야 하는 절차거든요. 일단 본인 인적사항이라도 쓰세요.”

결국 내 이름과 주소를 쓰고 있는데 깜순이를 데리러 나간 직원이 곧 돌아왔다. 감동적인 재회를 상상하면서 여기까지 달려왔건만 녀석은 눈길도 주지 않고, 보호소 직원들에게 아양을 떨기 바빴다.

“이 녀석 성격이 엄청 좋아요. 아주 순해요.”

깜순이의 친화력이 여기서도 발휘 된 모양이었다. 서류를 마저 작성한 다음 내장 칩 비용까지 지불하고 나서야 깜순이를 안아볼 수 있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계실 기사님 생각에 감사인사를 남기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가는 동안 깜순이는 얌전히 내 품에 안겨 창밖만 바라보았다. 바로 202호 문을 두드릴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 전에 잠시 깜순이를 우리 집에 초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깜순이는 휴게실에 곧 잘 휴게실에서 나를 기다리곤 했지만 한 번도 우리 집 현관문 앞까지는 올라온 적이 없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깜순이를 안고 욕실로 향했다. 강아지용 샴푸는 없어서 아쉬운 대로 따뜻한 물로 씻겼다. 발버둥 칠까봐 걱정했지만 녀석은 의젓하게 내 손길에 맞추어 몸을 돌려주는 배려까지 보였다. 물과 간식까지 먹은 깜순이는 조심스럽게 집안을 둘러본 다음 내 곁으로 와 누웠다. 긴장이 풀리는 바람에 몸이 노곤해져 나도 깜순이의 옆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눈을 떴을 때 깜순이는 이미 일어나서 집 구경을 할만큼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이 돌아오기 전에 녀석을 아저씨 댁으로 돌려보내야했다. 깜순이를 끌어안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저씨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깜순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 놈아 어딜 다녀왔어. 들어가자.”

아저씨가 깜순이의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깜순이는 질질 끌려가는 모양새로 어두운 집 안으로 사라졌다.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싶었지만 알 수 없었다. 당장 안락사 당하는 것을 막는 것 외에 이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후로 깜순이가 밖에 나와 있는 일이 드물어졌다. 아저씨는 개를 다시 잃어버리느니 내보내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으신 것 같았다. 이따금 계단을 내려가면서 202호 문 너머에 있는 깜순이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래도 가끔은 동네에서 아저씨와 산책을 나온 깜순이를 만날 수 있었다. 아저씨는 나름으로 깜순이와 잘 지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같았고, 나는 변한 깜순이의 생활에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가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흘렀다. 월요일 아침이었던가, 이른 아침을 먹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밖에서 끙끙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개가 우는 소리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더니 깜순이가 앞까지 와 있었다. 새까만 눈망울을 유감없이 빛내면서 나한테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녀석이 사람이었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깜순이가 제 발로 나를 찾아온 것이 뭉클해서 눈물까지 찔끔 났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깜순이는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당장이라도 데리고 들어와 전처럼 간식도 먹이고, 함께 낮잠도 자고 싶었지만 가족들이 아직 집에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나갈게. 이따가 보자.”

깜순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문을 닫았다. 오랜만에 함께 놀 생각에 마음이 즐거워졌다. 가족들은 금세 바깥에 있는 자기 자리를 찾아 집을 나섰지만 그새 깜순이도 자기 자리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텅 빈 휴게실을 보며, 잠시 서운하긴 했지만 한 번 찾아왔으니 조만간 또 다시 깜순이가 우리 집 문을 두드리지 않겠느냐고 나를 위로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봄이었다. 유난히 춥고 길었던 겨울 때문에 어느 해보다 기다린 봄이었지만 상상 속에서 부풀려진 것이 맨 얼굴을 드러낼 때에는 대개 기대를 충족하는 법이 없었다. 나는 긴 방황을 끝내고 원하던 회사 보다 못 미치는 곳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신입의 하루는 하는 것도 없이 바빠서 설레는 봄바람이나 꽃놀이는 다른 세상 얘기처럼 느껴졌다.

깜순이는 월요일이었다는 것 밖에 기억나지 않는 그 날 이후로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인가, 다음다음 날에 멀리 사는 주인아저씨의 아들이 집을 정리하기 위해 찾아왔다가 빌라 주민에게 깜순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데려갔다고 했다. 나의 사려 깊은 친구가 작별을 고하려고 찾아 왔으나 내가 눈치 없이 못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며칠은 깜순이가 보고 싶어서 앓기도 했지만 내 기도가 이루어진 셈이니 이제 와서 무르자고 할 수도 없었다. 결국에는 무엇 하나 해피엔딩인 것이 없었다. 원하는 회사도 못 가고, 깜순이는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도 없게 되어버렸으니 그저 그런 결말이었다.

인생은 지난겨울처럼 지지부진 하게 흘러가면서 고비도 만나고, 손톱만한 일에 눈물 나게 행복하기도 하면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아닐까.

혹시라도 깜순이가 길을 잃어버리는 날에는 내 번호로 전화가 올 것이다. 그럼 나는 한 달음에 달려가서 오랜 만에 만난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 그게 유일한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별 볼일 없는 봄에 작년과 같은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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